어떤 피조물이든 그것이 목적이 되면 우상이 된다
성화상 그 자체는 목적 아닌
주님께 영광 드리기 위한 도구
어떤 사제가 있었습니다. 그의 꿈은 매우 컸습니다. 자신이 있는 동안 본당의 주일미사 참례 신자 수를 두 배로 올리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드디어 첫 본당에 부임하였습니다. 늘 신자들을 섬기는 충실한 종으로 살았지만 좀처럼 신자 수가 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5년이 흘렀습니다. 절망에 빠진 그는 성당 십자가 앞에서 “주님, 저는 실패한 신부입니다. 신자를 거의 늘리지 못했습니다”라고 한탄하듯 말했습니다.
그러자 십자가의 예수님으로부터 “네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내가 실패한 것이다”라는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그는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실패한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신자가 많아졌다면 네 신자가 많아진 것이냐, 내 신자가 많아진 것이냐?”
이 사제에게 신자는 그리스도께 가는 길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이럴 때 본당 신자들이 나의 ‘우상’이 됩니다. 우상은 피조물을 하느님 아닌 나의 영광을 추구하기 위해 섬길 때 만들어집니다.
주님은 “어떤 형상으로도 우상을 만들어 타락하지 않도록 하여라”(신명 4,16)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교회는 처음부터 많은 그림과 성상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8세기 무렵 성화상은 우상이니 파괴해야 한다는 운동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이 논쟁의 종지부를 찍은 것이 787년 제7차 니케아공의회입니다. 이 공의회에서 성화상을 만들어 공경하는 것은 계명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근거는 예수님의 강생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인간이 되심으로써 성화상의 새로운 ‘경륜’을 시작하신 것입니다.”(2131)
하느님께서 피조물 안으로 들어오셨는데 사람이 되신 하느님도 우상이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은 지속되었고 지금도 개신교에서 가톨릭을 비판하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이러한 비판은 우상 숭배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기에 생기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이미 주님께서 구리 뱀과 계약의 궤와 그 위에 천사 둘의 모습을 만들어 놓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구리 뱀과 계약의 궤, 그리고 천사들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닌 주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한 길이요 수단이었습니다.
“성화에 대한 공경은 그 본래의 대상에게 소급되며” “성화를 공경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성화에 그려진 분을 공경하는 것입니다.”(2132)
그 성화나 성물이 불탔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불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성화상을 만들지 않고 하느님을 섬기되 하느님을 자기 이익과 영광을 위한 목적으로 섬기면 그 사람에게 하느님도 우상이 됩니다.
바리사이들은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만들지 않더라도 우상 숭배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돈을 통한 자기 영광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하느님은 자신들 재산을 늘려주는 도구입니다. 우상을 만들지 않아도 우상 숭배자입니다.
그들은 참 하느님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비웃었습니다.(루카 16,14 참조)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을 마치 소처럼 자신들이 부려 먹을 수 있는 존재로 규정해버린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드느냐, 만들지 않느냐가 아닙니다.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우상으로 만들고, 하느님 영광만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모든 피조물이 주님을 찬미하는 도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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