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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주님 공현 대축일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dariaofs 2023. 1. 7. 00:19

세상 모든 것 비추는 구원의 빛… 우리는 기뻐하며 따릅니다

모든 민족 대표하는 동방 박사
아기 예수께 예물 드리며 경배
별의 인도를 따랐던 그 여정처럼
주님 따르는 신앙의 길 걸어야

 

       안드레아 만테냐 ‘동방 박사들의 경배’. (미국 로스앤젤레스 폴 게티 미술관 소장)
 

주님 공현 대축일은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와 경배드리고 예물을 바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별의 인도를 받은 동방 박사들의 아기 예수 방문으로 구세주의 빛이 온 세상에 비쳤다.

교회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오시고 인류에 당신을 드러내 보이신 것을 동방 박사들의 방문 사건으로 되새기고 경축한다.

 

본래 축일은 1월 6일이지만, 한국교회에서는 모든 신자가 이날을 경축하도록 1월 1일 다음에 오는 주일에 지낸다. 주님 공현 대축일의 의미와 동방 박사들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살펴본다.

■ 구세주의 빛 발견한 동방 박사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11)

고대사회에서는 하늘에 새로운 별이 떠오르면 별이 나타난 지역에 중요한 인물이 탄생한다고 여겼다. 신약성경 원문을 보면, 박사라는 단어가 마술사와 점성술사를 뜻하는 ‘마고스’(magos)로 나와 있다.

 

보통 성경에서 점성술사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마태오복음서에 이들은 천문학적 지식과 탁월한 지혜를 가진 이방 세계의 현자들로 나타난다.

복음서에는 이들의 출신이나 인원수가 기록돼 있지 않다. 박사들이 왔다는 ‘동방’은 성경에서 이스라엘을 기준으로 동쪽인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로 추정된다.

 

3세기 교부 오리게네스는 아기 예수에게 황금·유향·몰약 세 가지 예물을 드렸다는 기록에 따라 박사들의 수를 셋으로 봤다. 과거에 동방 박사는 삼왕(三王)이라고도 표현됐다.

구약의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이사 60,3)라는 말씀과

 

“타르시스와 섬나라 임금들이 예물을 가져오고, 세바와 스바의 임금들이 조공을 바치게 하소서”(시편 72,10) 등의 예언을 예수의 탄생과 관련지어 해석했기 때문이다.

 

교회 전승 안에서 이들의 이름은 멜키오르, 발타사르, 가스파르로 알려졌고, 중세 때부터 성인으로 공경됐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시며 다윗의 자손”(마태 1,1)으로 소개된다. 예수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은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구원에 참여하게 될 것을 드러낸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예수의 탄생으로 구원의 빛이 유다인뿐 아니라 이방 민족들까지 비춘다는 것을 강조하며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계획을 보여준다.

 

대부분 성화에서 동방 박사들은 인종과 연령이 다르게 표현돼 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이 온 인류의 기쁨이라는 사실을 부각한 것이다.

■ 그리스도의 신원 드러내는 예물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온 것은 모든 민족을 대표해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황금·유향·몰약을 예물로 가져왔다. 각 예물은 아기 예수가 누구이며 어떤 운명을 지녔는지를 보여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황금은 가장 값비싸고 귀한 보물이다.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황금을 드린 것은 그리스도의 고귀함과 하늘과 땅의 왕이신 예수의 왕권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유향은 예수의 신성, 즉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뜻한다. 유향은 과거 거룩한 성전에서 제사를 올릴 때 태우던 향료였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단과 그리스도의 말씀이 담긴 성경,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향해 분향한다.

 

유향은 인간이 하느님께 바치는 가장 경건한 봉헌물로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서 하느님이심을 고백하고 구세주를 찬미하는 행위다.

몰약은 구세주의 사명을 상징하는 예물이다. 상처에 바르는 기름인 몰약은 죽은 자의 몸에도 발랐고, 장례 예식 때도 사용했다. 몰약 예물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수난받고 죽게 될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사실을 예고한다.

성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세 가지 예물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우리 각자가 매일 그리스도께 이 예물을 바쳐야 한다고 했다.

 

교황은 우리가 세상과 이웃을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려 노력하고, 매 순간 주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 삶의 금을 바치는 행위라고 봤다.

 

향유는 기도를 상징하며, 우리의 기도는 주님 앞에 솟아오르는 향이기에 날마다 기도로써 주님께 삶의 향기를 봉헌해야 한다고 했다.

 

몰약은 육을 이겨내는 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방해가 되는 인간적인 모든 욕심을 포기할 때 주님께 몰약을 바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2021년 바티칸 성탄 우표에 그려진 동방 박사.CNS 자료사진
 

■ 빛을 따라 걷는 그리스도인의 삶

동방 박사들의 여정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반영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우리 역시 그리스도께로 향하는 길 위에 있다.

 

구세주의 별을 보고 예물을 들고 경배하러 온 동방 박사들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며 주님께 맞갖은 예물을 드리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 삼종기도에서 “동방 박사들은 별의 상서로운 인도를 받아 힘든 여행을 거치고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신성이 숨겨져 있고 승리자처럼 보이지도 않는 아기를 보고도 경배했다”며 “이는 작음 안에 나타나신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이어 “동방 박사들은 하느님의 논리 앞에서 몸을 낮추고, 있는 그대로의 작고 가난한 모습의 주님을 받아들였고, 자신이 가진 생각을 버리고 하느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며 “그들의 부요함은 스스로를 구원이 필요한 존재로 여기는 겸손에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동방 박사들이 별을 바라보며 길을 떠났고,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우리에게도 “별을 보고 걷고, 그 걸음을 멈추지 말아달라”고 당부하며 “이것이 주님 공현 대축일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동방 박사들은 대화조차 나눌 수 없는 갓난아기와의 만남을 위해 험한 여정을 거쳐 예수를 찾아와 경배하고 예물을 바쳤다.

 

토마스 엘리엇의 ‘동방 박사들의 여행’이라는 시 속 “당신께서 이 아이를 통해 주시려는 구원의 모습을 우리가 보게 해 주십시오”라는 구절처럼 그들은 갓난아기의 연약하고 무력한 모습 속에서도 구원을 보려 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로 이끄는 별을 따라 겸손되이 경배의 여정을 시작했듯이 우리도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를 기쁘게 맞아들이고, 구세주를 따르는 신앙의 길을 걸어 나아가야 함을 기억하게 한다.

 

염지유 기자(가톨릭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