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톨 릭 상 식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213. 여섯째 계명③(「가톨릭교회 교리서」 2348~2359항)

dariaofs 2023. 4. 23. 00:51

주님의 은총으로 음란죄에서 벗어나는 방법

 

프라 안젤리코 ‘성 아우구스티노의 회개’. 욕망을 절제하는 문제로 괴로워하던 아우구스티노는 계시를 통해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 13,14)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읽고 깨달음을 얻었다.

 

교리서는 매춘이나 간음은 물론이요, 그 밖의 성적인 모든 무질서를 예외 없이 죄라고 가르칩니다. 동성애나 혼전 관계, 자위행위나 음란물을 시청하는 것도 모두 죄입니다.(2351-2359 참조)

 

교리서는 말합니다. “성적 쾌락은, 부부 일치와 자녀 출산이라는 그 궁극 목적에서 벗어나 그 자체를 위해 추구될 때, 도덕적 문란이 된다.”(2351)

자연법적으로 성(性)은 부부 사랑과 자녀 출산의 목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창조의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돈이나 명예가 삶의 도구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되는 것처럼 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심지어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마태 5,28)

행위만이 아니라 욕망 자체까지도 죄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성적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물론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은총으로는 가능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죄와 그 결과를 인지하고 유혹거리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고 기도하듯, 유혹에 나 자신을 시험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교만입니다. 아기가 불을 만지려고 하면 약간 손을 불에 가까이하여 불이 뜨겁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시는 그 불에 가지 않습니다.

외모가 출중하고 머리도 좋았고 언변과 운동 실력이 출중한데다 예의까지 발랐던 한 사제가 성적 아이콘이 된 일이 있습니다. 바로 ‘카사노바’입니다.

 

그는 서품을 준비하던 중 여자를 가까이하는 다른 사제를 보았고 자신만 절제하는 삶이 옳지 않다고 여겨 방탕한 삶에 물들게 되었습니다. 결국 진정한 사랑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도망만 다니다 쓸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두 번째는 하느님을 나의 창조자로 인정해야 합니다. 교리서는 말합니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앎으로써만,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인간들이 그분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주신 자유를 오용하는 것이 죄임을 이해하게 된다.”(387)

진화론은 죄를 합리화합니다. 심판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죄를 짓기 위해 하느님을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 아이 곁에 엄마가 함께 있다면 음란물을 볼 수 없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고 믿게 되면 혼자 있을 때도 정결해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무질서는 결국 내가 누구인지 몰라서 생겨나는 것이기에, 내가 누구인지 명확히 깨달으면 음란의 죄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교리서는 “그리스도인은 모든 정결의 모범이신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신분에 알맞게 정결한 생활을 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2348)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산다’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오로 사도가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19-20)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믿으면, 그 믿음에 성적 욕망이 어색하기에 지나친 욕정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성욕을 절제하는 것은 성모 마리아와 요셉 성인과 같은 진실한 사랑으로 나아가기 위한 일입니다.

 

전삼용 노동자 요셉 신부
수원교구 조원동주교좌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