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 작은 마을, 공동 우물터 축복하며 창조주 하느님께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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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과테말라에서 선교를 하고 있는 서울대교구 김현진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입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선교를 나온 지 벌써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감사하게도 그 시간 동안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는지, 이젠 과테말라의 음식이나 날씨, 문화 등이 가깝게 느껴집니다.
물론 저는 여전히 한국에서 온 외국인 선교사이지만, 그래도 함께 마음을 나눈 시간들을 통해 신자들과 문화와 언어의 차이를 넘어 같은 믿음 안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9년의 시간 속에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정말 감사한 시간임에 틀림없습니다. 물론 처음엔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러한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이 순간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특별히 과테말라에 살면서 많이 깨달은 것 중 하나는 하느님이 주관하시는 대자연을 대하는 자세입니다. 과테말라 신자들의 삶을 보면, 현실적인 여러 어려움으로 인해, 아플 때 의료적인 지원을 제대로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무래도 인간의 의지와 능력 밖에 있는 고통과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매일 연기를 내뿜는 활화산이 삶의 자리 바로 옆에 있고, 지진도 수시로 일어나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대자연의 이치를 더 겸손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기에 하느님께서 자연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선물들에 대해서도 아주 감사하게 여깁니다.
물 부족과 공동 우물터
지난 4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에 특별히 마을의 공동 우물 및 빨래터를 축복하는 예식이 있었습니다. 그때 신자들과 함께 감사 미사를 봉헌하고 축복 기도를 하면서 그 마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전 세계적인 문제일 텐데, 과테말라도 여전히 물 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습니다. 저 역시 가끔 마을에서 물이 끊길 때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곤란한 적이 많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제가 선교를 하고 있는 ‘산 베드로’라는 마을에서는 아주 옛날부터 선조들이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서, 마을까지 관들을 연결해 두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한가운데 있는 광장에는 커다란 공동 빨래터가 있고, 골목길에서도 그 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수도관 설치를 해놓았습니다.
간간이 행정 도시인 안티구아 시에서 물 부족 또는 펌프 문제로 단수 공지를 할 때에도, 저희는 산에서 흘러내려 오는 물을 마을 전체에서 조금씩 나눠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그 ‘물’을 주시는 분이 누구 신지 너무도 잘 알기에, 1년에 한 번씩 마을 전체의 이름으로 본당 신부에게 공동 우물 및 빨래터 축복을 청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느님, 삶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물을 주시는 하느님, 그리고 빨래터를 통해 소일거리를 갖게 되는 것에 대한 감사가 전적으로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이날은 마을의 공동 빨래터를 형형색색의 풍선들로 꾸미는 동시에, 골목에 있는 각 수도꼭지에도 감사와 기쁨을 표현하는 장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새벽 미사에는 감사 미사 지향을 넣고 함께 기도를 드린 후, 미사 후 다 같이 모여 축복 예식을 하고 아침을 나눠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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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 그 소중함
이러한 예식들을 매년 신자들과 함께 거행하면서 정말 단순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마음을 다시금 되새기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자연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대자연을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께 대한 감사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삶에서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안에서,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다 보면 가장 중요한 본질을 잊은 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 하루하루 살아갈 힘을 주시는 분, 매일의 시간을 주시는 분,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과 하늘을 만드신 분이 누구이신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자연에 속해 살면서도 가끔은 그 소중함과 의미를 잊은 채, 너무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자리에 멈춰 삶의 주변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습니다.
매일매일 새롭게 뜨는 하늘의 태양, 없어서는 결코 안 될 물이라는 존재, 그리고 내가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땅까지.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창조물인 동시에 우리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렇기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따사로운 한 줄기 햇살을 맞이하며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 자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통해 여러 생명들이 살아 숨 쉬고 있음에 감사드리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자연에 담긴 하느님의 평화와 조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또 다른 형태의 ‘감사의 시간’으로 바뀔 것입니다.
물을 찾아 움직이는 까미난테 나무
또 특별히 저는 자연을 통해서도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이번 휴가 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활절이 끝나고 엠마오를 이용해 저는 아마존 지역에 다녀왔습니다. 아마존의 밀림 체험을 하면서 또 다른 자연이 숨 쉬는 세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신비로웠던 것은 ‘까미난테’(cami nante)라는 나무였습니다. 현지 원주민의 말에 따르면, 이 나무는 물을 찾아 계속해서 새로운 뿌리를 내어 이동한다고 합니다.
보통 우리가 아는 나무의 뿌리는 땅속 깊이 자리 잡은 채, 나무를 지탱하며 영양분을 흡수하는 역할을 하는데, ‘까미난테’란 나무는 밀림의 특별한 환경 안에서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물이 있는 곳을 찾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나무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물임을 알기에, 그 물을 찾아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명을 주는 물을 향해 계속해서 움직이는 나무. 어쩌면 새로운 뿌리를 내면서 동시에 지난 삶의 자리에 있던 뿌리를 거두는 것이 이 나무에게는 늘 새로운 도전이며 어려움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생명을 찾아 나서는 나무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속도보다는 방향성
아마존 밀림에 있는 ‘까미난테’ 나무들을 보면서 문득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묵상하게 됐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찾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혹시라도 안정된 삶에 취해, 영적인 물이 고갈되고 있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말라가고 있지는 않는가?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변화가 두려워서 그 자리에 그냥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명의 물을 찾아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까미난테’ 나무의 움직임은 수년에 걸쳐 이뤄진다고 합니다. 결코 한 번에 뿌리를 내고, 한 번에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조금은 느릴지라도 ‘속도’보다는 ‘방향성’이라는 가치 안에서, 이 나무는 대자연 안에서 생명을 찾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안에서 속도보다는 방향성을 중심에 두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을 찾고, 그분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신앙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각자의 속도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언젠가 모두가 하느님 품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가득한 기도를 함께 드려봅니다.
자연을 가득히 품고 있는 나라, 과테말라에 살고 있음에 다시 한 번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늘 자연을 통해 당신의 사랑과 은총, 그리고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또한 대자연 안에 담긴 수많은 가르침을 겸손되이 배우는 선교사가 되도록 여러분의 기도를 청합니다.
서울대교구 해외선교봉사국
후원 계좌 : 우리은행 454-035571-13-101
예금주 : (재)천주교서울대교구
김현진 신부(서울대교구, 과테말라 산 베드로와 산 후안 바우티스타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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