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을 찾 아 서

[신앙단상] 회개하는 마음

dariaofs 2023. 7. 10. 00:29

미사 전 고해성사 줄에 어른들과 함께 서 있는 초등학생을 보곤 빙긋이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아이와 비슷한 나이였던 시절 고해성사 줄을 길게 만들고 섰던 저와 친구들에게 “너희들은 다음에 성사보고 들어가서 미사 준비해”라고 쫓으시던 공소 회장님 생각이 떠오르며, 당시 회장님의 마음이 지금 내가 저 아이를 대견스레 보는 마음과 같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 같은 인간의 마음도 그런데 하느님 보시기에 겸손하게 죄를 성찰하는 사람이 얼마나 사랑스러워 보이실까요.

 

지금의 나를 되돌아보면,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죄에 대한 민감한 마음은 줄어들고, 겨우 판공성사 때나 되어 고백할 죄를 억지로 짜내보는 무딘 양심만 남은 듯합니다.

 

예수님께서 죄 없는 자가 먼저 죄지은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하시자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요한 8,9)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존경받아야 하는 순서가 되어야 할 ‘장유유서’가 깨닫지도 못하고 일상에서 누적되는 악의 크기를 지적하는 듯, 연륜이 쌓이면서 하느님과 점점 가까워져도 부족할 텐데 죄만 더해 가는 인간의 속성을 서른 살 청년은 꿰뚫어 알고 계셨던 듯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말씀하신 ‘생태적 회개’가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이전에 없던 죄가 새로이 하나 더 추가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깨닫는 것이겠지요.

 

지나온 개발 시대에는 산을 깎아 길을 내고, 물을 막아 댐을 쌓고, 땅을 파헤쳐 석탄과 자원을 캐내는 것을 전근대 혹은 빈곤과 싸워 이기는 승리이자 미덕으로 알았습니다.

인간을 만드시기 이전에 이미 우주와 온갖 자연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그 안에 살아계시는 하느님을 진지하게 성찰하게 된 것은,

 

이미 기후가 불안정해지고 생물 종이 하나둘 멸종해 가면서 자연에 무례하게 한 인간 폭력성의 결과를 느끼기 시작하고부터일 것입니다.

 

회개란 단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말로 용서를 청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입니다. 성당 문을 나서는 순간 또다시 미워하는 마음이 올라오고 증오의 언어를 내뱉으며 의롭지 않은 이익을 좇느라 허둥대는 것은 회개가 가슴으로 손발로 내려오는 진정함에 도달하기까지 아직 거리가 있는 까닭이겠지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자연을 바라보며 얻은 깨달음이 삶의 선택을 바꾼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가톨릭평화신문에 연재 중인 김 노엘라 선생의 꼬미 마을 이야기는 농부의 딸로서 서울 명동 한복판에 살다가 고향으로 귀촌을 결심하고 마을 공동체 운동을 하며 자연과 어울려 하느님을 찬미하며 살아가는 잔잔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안에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희망하고 주님을 바라고 찾고, 열망하며 기뻐하고 매달린다’고 고백합니다.

교황님 회칙을 읽으며 공동의 집인 지구를 보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고, 주부로서 텃밭을 가꾸다가 건강한 먹거리 지식을 이웃과 나누며 도시락 가게로까지 발전한 하늘땅물벗의 실천 사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