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톨 릭 상 식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235. 소리기도(「가톨릭교회 교리서」 2697~2704항)

dariaofs 2023. 10. 9. 00:52

우리가 불러주기를 바라시는 하느님

 

루도비코 카라치 ‘성 베드로의 울음’. 주기적으로 주님께 말씀을 드린다면 그분을 뵈옵는 관상까지 도달할 수 있다.

 

기도는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되새기는 시간입니다.(2697 참조) 아담과 하와가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을 수 있었다면 선악과를 따먹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경찰이 바로 앞에 있는데 신호 위반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문제는 하느님이 보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일단 보고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거꾸로 나아갑니다. 보이지 않아도 일단 보인다고 믿고 먼저 말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면 차차 들리게 되고 나중에는 온전히 보게 됩니다.

오랜 어둠 속에서 갑자기 밝은 빛으로 나오면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알아가는 것도 차근차근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는 먼저 말하고 다음엔 듣고 마지막엔 보는 과정의 기도법을 소개합니다. 곧 ‘소리기도-묵상기도-관상기도’(2699 참조)입니다. 소리기도는 주님께 말하는 것이고 묵상기도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며 관상기도는 그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선 우리가 말을 걸 수 있도록 당신의 거룩한 현존을 숨기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침기도, 저녁기도, 삼종기도, 성무일도, 묵주기도 등을 통해 그분께 말을 합니다. 소리기도의 내용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말이든 하면 됩니다.

어떤 할아버지가 저녁마다 성당에 기도하러 들르십니다. 그런데 10초도 안 돼 나오십니다. 본당 신부님은 매일 너무도 짧게 기도하시는 할아버지를 ‘기도할 줄 모르시는 분’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마지막 때가 온 것입니다. 사제는 신자들과 함께 할아버지에게 병자성사를 주러 병원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얼굴이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사제는 “할아버지, 뭐가 그리 좋으세요?”라고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예, 신부님. 저는 기도할 줄 몰라서 매일 성당에 들러 ‘예수님, 저 왔어요!’라고 인사만 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매일 ‘요셉아, 내가 왔다’ 하고 가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할아버지는 비록 짧게 기도했지만, 누구보다 깊이 기도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현존을 확실히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말씀드리는’ 그분을 의식하면 할수록, 내적인 것이 됩니다.”

 

“그러나 가장 내적인 기도를 하는 사람이라 해도, 소리기도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가장 내적인 기도가 관상기도입니다. “소리기도는 관상기도의 최초의 형태”(2704)라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할아버지처럼 ‘주기적’으로 기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2698 참조) 밥 먹고 잠자야 하는 필요성을 아는데 그것을 주기적으로 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랜 시간 주님께 말을 걸지 않는다면 현존에서 멀어지고 죄에 가까워집니다. 반면 위 이야기의 할아버지처럼 주기적으로 주님께 말씀을 드린다면 그분의 목소리를 듣는 묵상기도를 거쳐 그분을 뵈옵는 관상까지 도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당신 이름을 불러주기를 바라며 우리가 부담스러워하지 않게 조금은 몸을 숨기시고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전삼용 노동자 요셉 신부
수원교구 조원동주교좌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