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을 찾 아 서

[신앙인의 눈] 우주를 대하는 신앙인 / 고계연

dariaofs 2023. 12. 28. 00:51
“소행성은 태양계 기원과 진화의 비밀을 풀 열쇠”, “시간의 역사 속에 던져진 고(古)천문학”, “아는 만큼 보이는 과학”, “천문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의 벅참”,
 
“핫하고 신나는 뉴스로 가득 찬 우주”, “사건 지평선 너머로 빨려 들어가는 모든 물질”, “열정을 소문내고픈 천문학자들”, “상상력을 자극하는 우주 거대 구조.” 짧은 문구들이지만 지적 호기심을 건드리기에 충분하다.
 
필자가 최근 탐독한 「90일 밤의 우주」에 실린 젊은 천문학자 8인의 한 마디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같은 과학적 도구가 천체 물리학자들에게 새로운 발견의 가능성을 준다. 우리 눈앞에서 우주가 어떻게 계속 확장하고 변화하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광활한 우주, 지금까지 확인된 은하와 별, 행성의 무수함에 놀란다. 과학과 철학 모두에서 우리는 예상했던 결과만을 얻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진리에 대한 사랑으로 늘 영감을 얻고 우주의 각 조각을 통해 만물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길 바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6월 젊은 천문학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이다. 그들은 바티칸 천문대의 여름학교 참가자들인데, 교황의 말씀이 필자를 설레게 한 책 한 권처럼 강하게 꽂혔다.
 
사실 우주 관련 미디어에 어쭙잖은 콘텐츠를 올린 지 두어 달이 됐다. 주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 등 외신기사를 재가공하고 있다.
 
천문·우주 분야에 문외한이라 관련 도서나 뉴스, 정보에 의존한다. 광대한 우주가 속살을 드러내며 손짓하니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창조와 진화, 신학과 과학, 종교와 우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주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니 이런 물음이 꼬리를 문다. 먼저 73년 전 비오 12세 교황이 명쾌하게 정리했다.
 
“교회 교도권은 인간 과학과 신성한 신학의 두 분야에서 경험한 인간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진화론과 관련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다.”(회칙 「인류」 36항 참조)
 
이어 1996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다윈의 진화론은 가톨릭 교의에 모순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138억 년 역사의 우주 기원을 놓고 과학과 신앙은 엇갈린다. 그런데 교회가 창조론만 고집하지 않고 과학의 성과를 반영한 진화론을 수용했다. 의미 있는 조화가 아닐 수 없다.
 
성경에도 천체를 언급하는 몇몇 구절이 있다. 시편 저자는 약 2000년 전 이렇게 찬미한다. “우러러 당신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당신 손가락의 작품들을 당신께서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8,4-5) 이사야 예언자도 맞장구를 친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고 보아라. 누가 저 별들을 창조하였느냐?”(40,26)

요컨대 신앙은 과학의 준거틀인 실험과 증명으로 밝혀낼 수 없는 영역이다. 신앙인들은 이 세상과 우주의 신비를 하느님의 창조물로 믿는다.
 
과학에도 분명 한계가 있기에 절대화할 수 없다. 과학자들의 사명은 인류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연구하는 데 있다. 신앙과 과학의 지향점은 인간의 행복 추구에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둘은 서로 별개가 아니라 수레의 두 바퀴처럼 조화롭게 전진해야 한다.

다사다난했던 계묘년 한 해가 또 저문다. 일상에 매몰돼 분주했던 우리는 잠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자. 밤하늘에 쏟아지는 총총한 별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북극을 수놓는 오로라의 찬란한 우주쇼는 또 어떠한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말처럼 우주에서 본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다.
 
지구인으로 사는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에 눈떠야 한다. 극한 경쟁과 전쟁을 끝내고 지구를 살리며 하느님과 이웃 사랑으로 충만하자. 다가올 새해에는 우주에도 눈길을 주며 새 희망으로 나아갈 일이다.

※그동안 ‘신앙인의 눈’을 집필해주신 전주 문정본당 주임 안봉환(스테파노) 신부님, 가톨릭언론인협의회 고계연(베드로) 전 회장님, 서울 상봉동본당 주임 김민수(이냐시오) 신부님, 우리신학연구소 이미영(발비나) 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고계연 베드로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