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는 남편과 이혼하고 고등학생 딸과 함께 살며 식당에서 일한다. 윤희는 뭐든 드러내기 싫어하는 사람인 듯 뒤에 물러서 있고, 겉모습에서부터 외로움이 묻어나오는 사람이다.
20년 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에게 갑자기 날아온 편지를 몰래 뜯어본 딸에 이끌려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간다. 젊은 시절 윤희는 어쩔 수 없이 첫 사랑과 헤어지며 깊은 상처를 안에 묻고 살아왔다.
윤희가 사랑한 이는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일본 여성이었다. 상실과 체념으로 겹겹이 싸인 윤희의 얼굴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시리고 아픈 세월의 표정이었다.
딸이 엄마를 위로하려고 마련한 여행에서, 윤희는 자신의 모습과 과거를 다시 보게 되고, 딸도 엄마와의 새로운 만남으로 훌쩍 더 성장한다. 영화 ‘윤희에게’ 이야기다.
그리움과 아픔을 담담하고 조용하게 그려내는 이야기 안에는 서로를 배려하고 지지하는 모녀의 연대가 녹아 있다.
딸은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주는 용기를 지녔고, 엄마는 자신의 특이한 삶의 사건을 불평 없이 체득한 사려 깊은 모습이다.
이것이 인생의 상실과 두려움조차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모녀는 사람을 섬세하게 바라보고 만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려준다.
남들과는 다른 사랑 때문에 절망하는 수많은 ‘윤희들’에게 이 이야기는 전폭적인 사랑의 힘을 믿어 보라고 격려한다.
인간, 그리고 사랑을 참으로 알아가는 출발점은 누가 이미 만들어 놓은 틀이나 규정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살아 움직이는 다양한 인간현실이다.
그 현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한 가지가 ‘차이’다.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르기도 하지만, 자신의 내면 역시 인종, 성별, 출신으로 환원할 수 없는 풍부함을 지니고 있다.
특히 이주민이나 동성애자 같이 주류 사회가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적 소수자의 경우에 두드러진다. 성별이나 민족 같은 특징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자기 이해와 삶의 과정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든다.
우리 누구나가 경계에 걸쳐 있으며, 독특한 고유함과 저마다의 차이가 섞인 혼종(混種)의 삶을 살고 있다.
얼마 전 교황청 신앙교리부가 교리선언 ‘간청하는 믿음 (Fiducia supplicans)-축복의 사목적 의미’를 발표했다. 동성 커플에 대해 사목적 축복을 허용한 이 선언을 두고, 동성결합을 인정하느냐 아니냐는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선언의 초점은 그것이 전혀 아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가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를 더 충분히 드러낼 수 있는가가 문제다. 모든 존재는 축복받을 수 있다.
‘축복은 믿음의 표현이며, 보다 더 적극적으로 수용되어야 한다’는 선언이 교회가 앞으로 나가야 하는 지표이다. 축복이 전례 행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반드시 승인을 함축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감사와 격려와 위로를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방법이다. ‘누구든’ 따스하게 위로하며 인생의 선을 향해 나갈 수 있도록 격려하는 말이며 몸짓이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당신은 그 모습 그대로 선하고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것이 축복이다. 일상의 화법이면서 신앙의 화법이다. 더 깊은 우애와 일치 안에 살려면 대화가 필수적이다.
여기서 대화는 의견의 교환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더 가깝게 가려는 마음가짐’이다.(「모든 형제들」 198항) 교리선언은 그래서 교회가 더 많이, 더 가깝게 사랑할 수 있도록 축복의 범위를 확장한 것이다.
신앙에서 가장 핵심인 ‘구원’은 원래 악과 죄에서의 ‘구출’뿐 아니라 ‘축복’을 뜻했다. 구원의 삶이 교회의 가장 큰 관심이지만, 그 삶을 유지하고 보호하며 뒷받침하는 것은 축복이다.
언제나 축복하시는 예수님께 대한 새로운 고백이다. 예수는 하느님과 인간의 절대적인 차이의 경계에서 태어났고, 언제나 사회, 문화, 종교, 자기 정체성의 경계에서 살았다.
거기서 복음이 나왔다. 이 차이와 경계를 축복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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