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 경

한산도 제승당

dariaofs 2011. 12. 7. 17:38

이순신 장군의 얼이

살아 있는 곳이라 하여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통영에서 배를 타고

20여분 정도 가서

바다를 끼고

1km 걸어 올라가니

제승당이 있었다.

비는

옷깃이 젖을 정도로 내리고 있다.

우비를 입고

이순신 장군의 충절을 담아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열심히 담았다.

20111130  

 

 

 

 

 

 

 

 

 

 

 

 

 

 

 

 

 

 

 

 

 

 

 

 

 

 

 

 

 

 

 

 

 

 

 

 

 

 

 

 

 

 

 

 

 

 

 

 

 

 

 

 

 

 

 

 

 

 

 

 

 

 

 

 

 

 

 

 

 

 

 

 

 

 

 

 

 

 

 

 

 

 

 

 

 

 

 

                                                                                           산 위에 보이는 것이 '한산대첩기념비'다 

 

 

 

 

                                                                                                            거북등대

 

 

 

 

                    

 

 

 

 

 

 

 

 

 

 

 

                                                                                                     한산대첩기념비

 

 

 

 

 

 

 

 

 

이순신은 인종 원년(1545년) 음력 3월 8일(양력 4월 28일) 자시(23:00~01:00)에 한성 마르내골(乾川洞)에서 태어났다.

이 시기 조선의 정세는 정치적으로 불안한 시기였다.

이미 사림파와 훈구파의 대립으로 인해 연산군(燕山君 : 1476년~1506년,

재위 1494~1506년) 집권 중 무오사화(1498년 :김일손(金馹孫) 등

신진사류가 유자광(柳子光) 중심의 훈구파(勳舊派)세력들에 의해 사화를 입은 사건)와

갑자사화(1504년 :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尹氏)의 복위문제에 관련되어 일어난 사화)가 일어났었고 정계의 혼란은 깊어져만 갔다.

연산군의 폭정에 물리치고자 성희안(成希顔) ·박원종(朴元宗) 등이 군사를 일으켜,

진성대군을 옹립한 뒤 왕을 폐위시킨 중종반정(中宗反正 : 1506년)이 일어났다.

 

중종은 개혁정치를 단행하고자 조광조(趙光祖 : 1482~1519)등을 중용하였지만

신진사류세력의 지나친 이상주의적 성향과 개혁성,

그리고 훈구·공신세력들과의 깊은 반목으로 인해 또 다시

기묘사화(1519년, 남곤(南袞) · 홍경주(洪景舟) 등의 훈구파(勳舊派)에 의해

조광조(趙光祖) 등의 신진사류(新進士類)가 축출된 사건)를 일으키게 되었다.

 

중종의 뒤를 이어 인종(仁宗 : 1515~1545)이 즉위하였으나 병약하여 재위 8개월 만에 죽음을 맞이했다.

인종의 아우인 명종(明宗 : 1534~1567)이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니 또 다시 조정은 혼란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아래에서 외척세력인 윤원로(尹元老)와 윤원형(尹元衡) 등의

소윤(小尹)세력은 대윤(大尹)세력을 배척하였고 을사사화(1545년 : 윤임(尹任)일파인

대윤(大尹)이 반역음모죄 등으로 몰려 사림세력이 크게 화를 입은 사건)를 일으키게 되었다.

 

이렇듯 조선왕조가 정치적 혼란과 더불어 사회 ·

경제적으로 혼란을 맞아 점차 쇠퇴해가는 기미를 보일 무렵, 이순신이 태어났던 것이다.

이처럼 이순신이 태어나기 전 반세기 동안은 피로 물들었던 처참한 네 번의 사화가 있었지만,

유성룡(西厓 柳成龍 : 1542~1607, 선조 때의 재상)만은 이순신이 이 나라의 인재임을 미리 알고 있었다.

 

즉, 유성룡은 조선의 인물을 논한

《서애집(西厓集)》에서 “우리나라의 인물은 세종(世宗) 때가 제일이요,

성종(成宗) 때가 그 다음이요, 중종(中宗) 때가 또 그 다음인데,

중종 기묘(己卯) 때의 인물들은 문체가 빛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건국 초기의 의욕적이고 건설적인 기풍과 순수한 기상은 없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더구나 예로부터 ‘정치가 안정되지 않은 시기에는

시골에서 인물이 나고, 정치가 안정된 후에는 한성에서 인물이 난다’는 말이 전해져 오는데

이를 인용한다면, 이순신이 출생할 때만 하더라도 정치가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던 시대였으나

이순신만은 예외적으로 한성에서 나라의 인재로 태어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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