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톨 릭 상 식

설날의 의미

dariaofs 2012. 1. 22. 19:12

 

 

 

정월초하루라고 부르기도 하는 설날은 음력에 의한 새해 첫 날이다. 그래서 이 날은 묵은해와 작별하고 새해를 맞는 날이다.

 

설날 밤은 달이 없는 그믐날 바로 다음날이기 때문에 달의 배가 불러가는 출발점에 있는 날이다.

옛날에 조상님은 달에는 옥토끼가 살고 있다고 생각했고, 달을 사람의 삶과 농사에 밀접하게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조상님은 이 날을 매우 중요시했었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조심하는 여러 의식이 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설날의 차례와 성묘

설날 아침 일찍 사당이나 대청에 세찬과 세주, 떡국 등을 진설하고 조상에게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였음을 알리는 차례를 드린다.

 

차례 다음 세배, 음복 후, 조상 묘를 찾아가 간단한 세찬과 세주를 차려놓고 예를 올리는 것을 성묘라 한다.

설 차례는 떡국차례라 하여 떡국을 제수로 올리는 것이 상례이며, 그 밖의 제수는 기제사와 마찬가지이다.

 

각 집안마다 차례가 끝나면 마을의 어른들을 찾아 뵙고 새해의 축원을 빌고 덕담을 나누는 하례의 관습은 오늘날에도 남아있다.

 

설날 아침 차례와 성묘를 지낸 다음 친척과 마을사람들끼리 모여 여러 가지 놀이를 즐겼는데,

이 놀이들은 비단 설날에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겨울 농한기, 특히 설날부터 시작하여

설의 대단원인 정월 대보름날까지 즐겼다. 우리나라의 많은 민속놀이는 정월 대보름에 즈음한 이 시기에 가장 많이 집중되어 있다.

 

하 는 일 

조선시대에 의정대신들은 모든 관원을 거느리고 대궐에 나가 새해 문안을 드리고,

전문과 표리(거친 무명 또는 흰 명주)를 바치고 정전(왕이 임어하여 조회를 하는 궁전)의 뜰로 나가 조하(조정에 나아가 임금께 하례함)을 올렸다.

 

이 날 사당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라 하고 아이들이 입는 새 옷을 세장이라고 하며 어른들을 찾아 뵙는 일을 세배라 한다.

 

이 날 대접하는 시절 음식을 세찬(떡국)이라고 하며, 또한 이에 곁들인 술을 세주(초백주, 도소주)라 한다.

또 시루떡을 쪄서 올려 놓고 신에게 빌기도 한다.

 

한편 사돈집 사이에는 부인들이 근친하는 뜻으로 하녀를 서로 보내어 새해 문안을 드리는데, 이 하녀를 문안비라 한다.

 

민가에는 벽 위에 닭과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 액이 물러가기를 빌고, 남녀의 나이가 불길한 일을 당한 자는 세 마리의 매를 그려 문설주에 붙인다.

 

설날 꼭두새벽에 거리에 나가 맨처음 들려오는 소리로 1년간의 길흉을 점치는데, 이를 청참이라 한다.

 

또한 나무에 금․목․수․화․토를 새겨 장기쪽 같이 만들어 이것을 던져서 자빠지고 엎어진 것을 보아 점괘를 얻어 새해의 신수를 점치는데 이를 오행점이라 한다.

 

남녀가 1년간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빗상자 속에 넣었다가 설날, 황혼을 기다려 문 밖에서 태움으로써 나쁜 병을 물리친다.

 

설날부터 3일 동안은 길거리에 많은 남녀들이 떠들썩하게 왕래하는데, 울긋 불긋한 옷차림이 빛나며,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새해에 안녕하시오", "부디 승진하시오", "돈 많이 버시오" 등 좋은 일을 들추어 말하는 것을 덕담이라 한다.

 

설의 어원

설은 새해의 첫 시작이다. 설은 묵은해를 정리하여 떨쳐버리고 새로운 계획과 다짐으로 새 출발을 하는 첫날이다.

이 '설'은 순수 우리말로써 그 말의 뜻에 대한 해석은 구구절절 하다.

 

그 중 하나가 '서럽다'는 `설'이다. 선조 때 학자 이수광이 `여지승람'이란 문헌에 설날이 '달도일'로 표기되었는데,

'달'은 슬프고 애달파 한다는 뜻이요, '도'는 칼로 마음을 자르듯이 마음이 아프고 근심에 차 있다는 뜻이다.

 

`서러워서 설 추워서 추석'이라는 속담도 있듯이 추위와 가난 속에서 맞는 명절이라서 서러운지, 차례를 지내면서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여 그렇게 서러웠는지는 모르겠다.

 

다음은 '사리다'[愼, 삼가다.]의 `살'에서 비롯했다 설(說)이다.

각종 세시기들이 설을 신일(愼日)이라 하여 '삼가고 조심하는 날'로 기술한 것도 몸과 마음을 바짝 죄어 조심하고 가다듬어 새해의 첫 시작을 경거 망동하지 말라는 까닭이다.

 

옛날 문헌들에 정초에 처음 드는 용(辰)띠 날 말(牛)띠 날 쥐(子)띠 날 돼지(亥)띠 날

 

그리고 2월 초하룻날을 신일(愼日) 로 적혀 있음을 근거로 하여 육당 최남선이 풀이한 기원설이다.

새해부터 처음 맞이하는 십이일을 상십이지일(上十二支日)이라 하여 여러 가지를 삼가며 조심할 것을 가르친 풍속이 있는 걸 볼 때, 매우 타당한 설이다.

 

 `설'의 어원에 대해 또 다른 견해는 나이를 댈 때 몇 살... 하는 '살'에서 비롯된 연세설이다.

한국말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우랄 알타이어계에서 해가 바뀌는 연세를 '살(산스크리트語) ․ 잘(퉁구스語) ․ 질(몽고語)'이라 한다.

 

산스크리트 말에서 `살'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그 하나는 해가 돋아나듯 '새로 돋고 새로 솟는다'는 뜻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시간적으로 이전과 이후가 달라진다는 구분이나 경계를 뜻하고 있다. 이 모두 정초와 직접 연관되고 있다.

 

중국의 어원사전인 `청문엽서'에 보면 연세를 나타내는 `살'․ `잘'은 세(世)․ 대(代)․ 세(歲)․ 수(壽)를 뜻하고,

또 대나무나 풀이나 뼈마디를 뜻하는 절(節)의 어원이라고도 했다.

'몇 살 몇 살' 하는 `살'이 그 연세의 매듭(節)을 짓는 정초를 나타내는 `설'로 전화됐음직하다.

 

또한 설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견해는 '설다. 낯설다' 의 '설'이라는 어근에서 나왔다는 설(說)이다.

처음 가보는 곳, 처음 만나는 사람은 낯선 곳이며 낯선 사람이다.

 

따라서, 설은 새해라는 정신․문화적 시간의 충격이 강하여서 '설다'의 의미로, 낯 '설은 날'로 생각되었고, '설은 날'이 '설날'로 정착되었다.

 

곧 묵은해에서부터 분리되어 새해로 통합되어 가는 전이과정에 있는 다소 익숙치 못하고 낯설은 단계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설은 동지로부터 시작하는 마무리 시기에서부터 새해를 맞이하는 새 시작의 설날을 정점으로 하여,

그리고 상십이지일(上十二支日)과 정월 대보름의 대단원까지를 한 선상에서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설날의 음식

새해 첫날을 설날이라 하니 설날 아침에는 식구들이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새로 지은 옷(설빔)을 입고,

세찬과 세주를 마련하여 조상님께 세배 드리는 의식 곧 차례를 지낸다. 차례가 끝나면 어른들께 새해 첫인사를 올리니 곧 세배다.

 

집안 세배가 끝나면 차례를 지낸 음식으로 아침을 먹고, 일가 친척, 이웃 어른을 찾아 세배를 드린다.

세배를 받는 쪽에선 손님께 대접하는 음식상을 차린다.

 

어른에겐 술과 음식을, 아이들에겐 과자나 돈을 주고 덕담을 건넨다.

아이들에게 주는 세뱃돈은 저축 정신을 기르는 뜻으로, 곧 계란을 사서 닭으로 늘려 다시 송아지에서 소로 늘려 논밭을 장만하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또한 돌아가신 조상의 묘소를 찾아 새해 인사를 올리고 안방마님은 노비를 친정으로 보내 길어(吉語)로써 문안을 드린다.

벼슬하고 있는 집에서는 붉은색을 칠한 상을 대청에 마련해 두면 세배 온 사리(司吏)들이 이름 쓴 종이를 상에 놓고 돌아간다.

 

또 설날 새벽 가족들은 이명주(耳明酒)라 하여 귀가 밝아지는 약주를 한잔씩 마신다.

세찬 가운데 어느 집에서나 흰떡(白餠)을 만들어 떡국을 끓인다.

떡국 한 그릇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다는 뜻이 있다.

떡을 만들 때는 멥쌀을 가루로 찧어 체에 쳐서 물을 뿌려 버무려 시루에 쪄서 고수레 떡을 한다.

절구나 안반에 놓고 장정들이 힘을 다하여 떡메로 식기 전에 여러 번 쳐서 차진 떡덩이를 만든다.

이것을 손으로 비벼 가래떡을 만들어 적당히 굳으면 돈짝처럼 썰어 떡국 떡을 마련한다.

 

또한 가래떡을 굵게 비벼서 떡살로 문양을 찍어 절편이나 꽃절편을 만들며, 쑥이나 송기를 넣어 떡을 만들어 차례상에도 올리고 꿀에도 찍어 먹는다.

차례상에는 메 대신에 떡국을 올린다. 식사 때에는 떡국과 특별히 준비한 음식을 함께 내고 그 밖에는 다과상을 준비한다.

 

정월의 설날 음식으로는 떡으로 만들 수 있는 떡국, 떡만두국, 떡볶음, 떡찜, 떡산적, 떡잡채 등이 있다.

고기 음식으로 갈비찜, 사태찜, 생선점, 편육, 족편, 지짐으로 녹두빈대떡, 각색 전, 채소 음식으로 삼색 나물, 겨자채, 잡채 등이 있다.

우리나라 음식을 대표할 수 있는 신선로와 김치 곧 떡과 함께 먹는 장김치가 있고

후식류로는 약과, 다식, 정과, 엿강정, 강정, 산자, 식혜, 절편, 꽃절편, 인절미,수정과 등이 있다.

정월 상차림은 아침 일찍 밝은 마음으로 조상께 지낸 차례 음식으로 고루 차린다.

 

설날의 놀이

 

윷놀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윷판을 만들고 윷을 던지는 풍경처럼 정겨운 모습도 없다.

도가 나오면 풀이 죽어 있다가도 누가 모라도 던지면 환호성을 지르는 놀이,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누구나 즐기는 윷놀이는 전래놀이 중 가장 오래된 놀이로 그 기원에 대해 정설은 없다.

다만, 중국의 저포란 놀이가 전래되어 토착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몽고의 고속일 살한이라는 놀이가 윷놀이와 흡사하다는 연구가 있다.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을 의미한다.

 

널뛰기

우리나라 여성들이 가장 즐겨하는 놀이의 하나인 널뛰기는 고유한 전통을 지니고 널리 전승되었으며,

음력 정초를 비롯하여 단오나 추석 등 큰 명절날에 성행되어 왔다.

주로 젊은 여자들이 즐기는 가장 활동적인 놀이로서, 긴 널빤지의 한 가운데에 짚단이나 가마니로 밑을 괴고

그 양 끝에 한 사람씩 올라서서 마주 보고 번갈아 뛰면서 즐기기 때문에 여성들의 신체단련에도 도움이 되었다.

 

널뛰기의 유래에 대해 민간에 전해 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널뛰기는 옛날 유교사회의 도덕적 구속으로 말미암아 출입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여인네들이,

제한된 공간 안에서나마 바깥 세상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으로 담장 곁에 널을 놓고 뛰면서 밖을 내다볼 수 있게 만들어진 놀이라 한다.

또 다른 속설로는, 옛날에 남편이 감옥에 갇히게 되어 남편의 안부가 몹시도 궁금한 그의 아내가 또 다른 죄인의 여인과 공모하여,

널을 뛰면서 서로 담장 너머 옥 속에 갇힌 남편의 얼굴을 엿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편 널뛰기에 관한 옛날 속담으로,『널뛰기를 하면 그해에는 발바닥에 가시가 들지 않는다』라든가,

『처녀 시절에 널을 뛰지 않으면 시집을 가서 아기를 낳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모두 문 밖 나들이가 거의 없었던 시절에 운동 부족으로 인한 부녀자들의 건강과 관련지어 이 같은 이야기가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다

 

   

  ~~~ 이 글은 가톨릭 상식이 아니지만 그냥 이곳에 올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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