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사제서품을 한사코 거절하다가 사제가 된 뒤에도 계속해서 수도생활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나서야 사제품을 받았다.
교부들이 이처럼 수도생활을 더 간절히 원했던 이유는 박해가 끝난 뒤에, 순교 정신을 이어받을 수 있는 길이 수도생활과 동정생활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순교와 동정생활의 관계에 관해서는 암브로시우스의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동정생활이 찬양받는 이유는 순교자들 안에서 동정생활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동정생활 자체가 순교자를 만들기 때문입니다』(암브로시우스, 「동정녀」 1,3,10).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고대교회 신자들은 수도생활과 동정생활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온전히 따르고 하느님과 일치된 삶을 살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우리는 히에로니무스의 글에서, 수도생활과 동정생활 자체가 하느님과의 일치된 삶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동정생활과 수도생활을 시작한 이들에게, 날마다 단식과 절제된 삶, 기도를 통해서 수도자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라고 충고한다.
곧, 밤기도를 더 잘 하기 위해선 음식을 더욱더 절제하여 몹시 배고픈 상태로 만들고, 성서를 자주 읽고, 성서를 읽다가 잠들고, 잠들었을 때에도 성서 말씀이 머리 속에 가득 차있으라는 것이다.
고대교회의 수도자의 삶과 우리의 삶을 비교해보면, 오늘날 우리가 너무 안이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한 번쯤 반성해야 한다. 우리가 히에로니무스의 충고에 따라 산다면, 우리도 고대교회의 순교정신과 수도정신을 이을 수 있지 않을까?
평생 성서를 연구하고 번역한 히에로니무스! 그리스어로 된 신·구약성서를 쉬운 라틴어로 번역하여 「불가타 성서」(대중성서)를 우리에게 남겨준 위대한 성서학자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데 성서공부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 그럼 그의 입을 통해서 직접 들어보자.
『늘 성서를 읽으십시오. 아니 당신 손에서 성서가 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편지」 52, 7). 『성서를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지혜가 그대를 사랑할 것입니다. 성서를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성서가 그대를 보호해 줄 것입니다. 성서를 흠모하십시오.
그러면 성서가 그대를 감싸줄 것입니다. … 그리하여 그대의 혀는 그리스도 외에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거룩한 것들이 아니라면 아예 입에 올리지도 않을 것입니다』(「편지」 130, 20). 『성서를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이사야서 주해」서문 1, 2).
히에로니무스의 이 같은 충고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심금을 울리는 명언이 아닐 수 없다. 교부들을 만난다는 것은 단순히 교부들에 대한 지식을 하나 얻는 것이 아니다.
교부들의 발자취를 따르면서 신앙의 가르침과 지혜와 열정을 배우고, 때로는 교부들과 신앙의 길을 함께 가면서 그들의 삶을 닮도록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읽을거리 : 『내가 사랑한 교부들』(분도출판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