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과 교회 공동체의 사회 참여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복음적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다. 결국 이 사회 참여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정성이 드러나고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속이원론(聖俗二元論)과 내세주의(來世主義)에 기초한 정교분리(政敎分離)는 세속과의 단절을 강조함으로써 신앙과 교회가 사회 현실에 무관심하게 만든다.
사실 그리스도인이 사회적이고 정치-경제적인 이슈에 참여하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신앙에 있어서 영적인(spiritual) 차원과 물질적인(material) 차원을 분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재(reality)에 대한 성경의 이해는 이러한 극단적인 분리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성경은 생명에 대한 전인적(全人的, holistic) 전망을 제시한다.
성경에 따르면, 영(靈)과 살아있는 몸은 하나이다.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성경에 따르면, 영(靈)과 살아있는 몸은 하나이다.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성경에서 영, 육(肉), 생명 등은 인간이 가진 부분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이고 전인적인 인간을 가리킨다. 따라서 성경의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인간 이해는 인간을 육신이라는 감옥에 갇힌 영혼으로 보았던 플라톤 식의 이원론과는 분명히 다르다.
성경은 영혼의 불멸이 아니라 몸의 부활을 가르친다.
성경은 영혼의 불멸이 아니라 몸의 부활을 가르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성경의 육(肉)은 나약하고 죽을 인간, 죄악에 빠지기 쉬운 인간, 하느님의 능력과는 대조되는 인간 능력의 한계를 가리킨다. 즉 지상에 얽매인 세속적인 인간으로서 하느님의 반대편에 서 있는 인간을 가리킨다.
육적인 인간은 영(靈)의 영향을 받고 사는 영적인 인간과 대조를 이룬다.(갈라 5,22-26 1코린 2,10-16) 하느님의 영 없이 사는 육(肉)으로서의 인간은 자신에만 의존하여 세속적인 생각을 품고 사는 사람이다.(1코린 2,14)
이러한 의미에서 사도 바오로의 인간 이해는 육(肉)과 영(靈)의 대립에 기초를 둔다.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역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도 바오로의 인간 이해는 육(肉)과 영(靈)의 대립에 기초를 둔다.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역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이는 육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채워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육의 관심사는 하느님을 적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로마 8,3-8)
이러한 생명과 실재에 대한 성경의 전인적이고 통합적인 이해와는 달리 초대 그리스도교에서의 영지주의(Gnosticism)와 그 이후의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영(靈)과 물(物)의 이원론(dualism)이 강조되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육의 관심사는 하느님을 적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로마 8,3-8)
이러한 생명과 실재에 대한 성경의 전인적이고 통합적인 이해와는 달리 초대 그리스도교에서의 영지주의(Gnosticism)와 그 이후의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영(靈)과 물(物)의 이원론(dualism)이 강조되었다.
이들은 영(靈)과 물(物)을 분리할 뿐 아니라 전자를 후자 보다 더 우위에 둔다. 그리고 영적인 것이 최상의 실재이고, 물질의 세계는 단지 다른 세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지상에서의 현세적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늘에서의 영원한 생명이 된다.
따라서 지상에서의 현세적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늘에서의 영원한 생명이 된다.
이러한 영과 물의 이원론은 결국 사후(死後) 세계에서의 영광을 위하여 이 세상에서의 고통을 합리화하고, 억압과 착취의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구조를 정당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근본 체험은 이집트 종살이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근본 체험은 이집트 종살이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유다인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 단순히 개인적인 죄만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종살이로부터의 해방을 계속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의 토대로 남아 있다.
다시 말해 성경은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분리가 아니라 영성(靈性, spirituality)과 물성(物性, materiality)의 통합적 차원을 제시한다.
따라서 성경은 구원의 역사에 대한 이른바 영성화(spiritualization)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성경은 개인적인 신심(piety)과 단체적인 경신례(worship)에서 사회-경제적 관심을 분리하려는 시도에 반대한다.
오히려 성경은 모든 존재의 생명과 자유를 위한 투쟁에로, 영(靈)과 물(物)의 통합적인 안녕(well-being)인 샬롬의 삶에로, 정의, 평화, 창조 세계의 보존(integrity of creation)을 위한 실천에로 우리를 초대한다.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학위(S.S.D.)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 성서 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 연구소에서 성서학 박사학위(S.S.D.)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창현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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