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계 교 회

[신학과 영성] 교황 강론 “추기경은 평화의 건설자가 되어야”

dariaofs 2014. 2. 27. 00:30

2월 22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추기경 서임미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 서서 가고 계셨다.” (마르 10,32)

 

이 순간에도 예수님께서는 우리 앞에 서서 가고 계십니다. 그분은 항상 우리 앞에 계십니다. 그분은 앞장서서 길을 인도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기쁨과 우리 자신감의 원천입니다. 그분의 제자가 되고, 그분과 함께 머물고, 그분의 뒤에서 걷고, 그분을 쫓아가는 기쁨과 자신감 말입니다.

 

우리가 추기경들과 함께 시스틴 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할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신 첫 말씀은 “걷는 것”, 그분과 함께 길을 나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길을 나섭니다. 그런 다음 건물을 세우고, 고백합니다.

오늘도 같은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수님께서는 가고 계셨습니다”라는 행동으로서, 계속되고 있는 예수님의 행동으로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과 관련해서 중요한 점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빈번하게 걷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길 위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철학을, 어떤 이념을 가르치러 오시지 않았다는 것 말입니다. 오히려 그분은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분과 함께 수행해야 할 여정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걸음으로써 가는 길을 배웁니다. 형제 여러분,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걷는 것, 그것이 우리의 기쁨입니다.

 

   

▲ 22일 오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기경 서임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교황청 유튜브 갈무리 youtube.com/vatican)

 

그렇지만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 편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길은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정을 함께할 때, 그분은 당신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놀라워하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예루살렘에 간다는 것은 분명히 메시아와 함께 개선하는 것, 그분의 승리를 나누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요한과 야고보의 청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예수님께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에 대해 두려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들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두려워했습니다.

 

그 당시의 제자들과는 달리, 우리는 예수님께서 승리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우리는 십자가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실 십자가는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는 인간이며, 죄인이며,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겪은 유혹이 아니라, 사람들이 겪는 유혹을 받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생각을 따라가게 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겠습니까? 복음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을 불쾌하게 여기기 시작하였다”(마르 10,41). 그들은 불쾌하게 여겼습니다. 세속적인 생각이 지배할 때마다 그 결과는 경쟁, 질투, 분열, 그런 것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매우 유익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내적으로 정화시키고, 우리의 양심을 비추고, 우리를 도와 우리 자신을 예수님과 완전하게 결합시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새 구성원을 받아들여 추기경단이 확장되는 이때 우리를 결합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부르셨다”(마르 10,42). 여기서 예수님의 다른 행동을 볼 수 있습니다. 길을 가시다가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멈추셨고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형제들이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당신께 부르시도록 합시다!

 

그분께서 우리를 “불러 소집하게” 합시다. 그분의 말씀을 들읍시다. 그분의 말씀을 함께 받아들일 때 생기는 기쁨을 누립시다. 그분의 말씀과 성령이 우리를 가르치실 때 생기는 기쁨을 누립시다. 그리고 그분을 중심으로 한 데 모여 한 마음 한 뜻을 이룹시다.

 

한 분 스승께서 우리를 그렇게 “불러 소집하실” 때, “가까이 부르실 때”처럼, 저는 교회가 요구하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교회는 여러분을, 여러분의 협력을, 그리고 여러분과 저 사이의, 그리고 여러분 사이의 친교를 요구합니다.

 

교회는 여러분의 용기를, 항상, 그러니까 제때이건 아니건, 복음을 선포하는 용기를, 또 진리를 증언할 용기를 요구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양떼가 전진하게 해달라는 여러분의 기도를 요구합니다. 이것을 잊지 맙시다! 말씀을 선포할 때 기도하는 것은 주교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입니다.

 

교회는 여러분의 동정심을 요구합니다. 특히 고통과 시련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전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을 위한 동정심을 요구합니다. 우리 함께 차별과 박해로 고통을 받고 있는 교회 공동체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우리가 영적으로 결합되어 있음을 함께 보여줍시다.

 

우리는 모든 차별과 싸워야만 합니다! 교회는 그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를 요구합니다. 그들이 신앙에 있어서 흔들림이 없도록, 악에 대해 선으로 맞설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불의의 고통을 겪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가 가르침과 희망과 기도로써 평화의 건설자가 되기를 요구합니다. 평화를 구축합시다! 평화의 건설자가 됩시다! 그러므로 지금 폭력과 배제와 전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평화와 화해를 호소합시다.

 

형제 여러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의 뒤를 쫓아 함께 걸읍시다. 항상 그분께서 우리를 함께 부르시게 합시다. 그분의 백성 가운데서,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 가운데서, 거룩한 어머니 교회 한가운데서 우리를 함께 부르시게 합시다. 감사합니다!

 

번역 : 박동호 신부 (서울대교구 신정동성당 주임,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