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하느님께서 함께해 주시길 청합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는 자신의 일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란 단순히 개인적인 면에서 유익한 것만이 아니라 이웃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의미 있다거나 가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은 하느님께서 우리가 해주길 바라시는 일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런 일들을 찾아 행하면 그것이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반대로 하느님의 뜻에 위배되는 일들이 어떤 것인지는 명백히 알려져 있기에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도둑질을 한다거나 이웃에게 폭력을 휘두른다거나 살인을 한다거나 하는 것이 그런 예입니다.
경우에 따라 비록 그것이 종종 “합법”이라고 인정되는 판례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니란 것을 양심은 알려줍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합법이라고 하지만 소수의 권력집단이 자행하는 도둑질, 폭력, 살인이 빈번히 일어나는 곳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이 그런 부당한 행태와는 완전히 다른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 때문에 고민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그런 일들의 배후에 있는 돈이나 권력의 유혹이겠습니다.
‘결혼을 할까, 아니면 수도자가 될까’
수많은 ‘좋은 일’ 가운데 선택해야 할 때, 그 기준은?
좋은 일을 하고자 할 때, 정작 우리가 고민하는 지점은, 여러 좋은 일들 가운데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입니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면 모두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고민은 왜 하게 되는 걸까요? 즉 모두가 하느님의 뜻이라 간주할 수 있는데 나는 왜 고민하는 걸까요? 오늘 속풀이는 이런 질문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결혼을 할 것인가, 아니면 수도자가 될 것인가? 미혼의 신앙인이 흔히 접하는 선택에 관한 질문일 것입니다. 사람은 전지전능하지 않기에 그것이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해도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선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는 일이 이왕이면 더 좋고, 풍성한 결과를 맺기를 바라게 됩니다. 결국 이 일을 선택하든 저 일을 선택하든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일이지만, 이왕이면 그분이 더 기뻐하실 일을 선택하느라 고민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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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 (페테르 루벤스의 초상화 세부) | ||
예수회의 공동 창립자 중에 중추적인 인물인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Spiritual Exercises)>이란 피정 지침서를 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뜻을 찾아갈 것인지도 알려줍니다. 성인의 조언에 따르면, 선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이 “더”(라틴어 magis, 영어 more)라는 개념입니다. ‘더’ 좋고, ‘더’ 풍성한 결실이 가능한 일. ‘더’ 보람되고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 하느님께서 ‘더’ 좋아하실 일. 그래서 하느님께 ‘더’ 큰 영광을 드릴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영신수련>에 따르면 선택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명확히 알게 되는 경우입니다.
이때는 사실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사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 하느님의 빛에 놀라 땅에 엎어진 상태에서 예수님의 환시를 보게 됩니다.
이 사건을 통해 사울은 바오로가 되고 주님을 전하는 사도가 됩니다(사도 9 참조). 또 마태오가 세관에 앉아 있다가 주님의 부름을 받습니다(마태 9,9). 직접 계시를 받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마음의 흐름을 읽고 하느님의 뜻을 찾아가 보는 것입니다. 어떤 사안을 두고 기도할 때 마음에 기쁨, 정열, 평화 등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지 잘 봐야 합니다.
이 작업을 위해서는 내 마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선한 영과 악한 영의 작용을 읽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냐시오는 이 일을 ‘영의 식별’이라고 하고, <영신수련>에 그 지침을 알려줍니다.
세 번째는 마음의 움직임, 즉 영의 움직임이 잘 잡히지 않을 때 사용하게 됩니다. 두 번째 방식이 정서적인 측면을 활용한 것이라면, 이 방식은 우리의 이성을 주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앞에 두고,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생기는 유익함, 하면서 생기는 무익함, 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유익함, 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무익함 등을 생각할 수 있는 한 다 적어보며 비중을 따져보는 작업입니다.
각 항목을 채운 답의 개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가지 답이라도 얼마나 큰 의미를 담고 있는지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답은 배점 1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 있는 반면 배점 10을 줄만한 이유도 있다는 것입니다.
경험적으로, 첫 번째 방식은 내가 거부할 수 없는 명확한 계기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입니다. 저도 뭘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시기를 생각하면, 하느님께서 직접 계시를 주시지 뭘 하고 계셨나 묻곤 합니다.
그런데 설령 그렇게 하느님의 초대를 받았다고 해도 제가 겁 없이 그 초대에 응했을 것이라고는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하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직관을 건드리는 하느님의 초대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우리 생애에 몇 회 정도는 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쪽에서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나쳐 버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두 번째 방식과 세 번째 방식은 정서적인 것과 이성적인 작업으로 특징을 구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마음(느낌)을 읽는 작업과 이성적 사유를 섞어서 사용하게 되기에 일반적으로 혼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영이 주는 위로와 악한 영이 주는 불안과 고독 사이에서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면밀히 확인해 봐야 하며, 동시에 내가 선택할 일이 다른 이들, 특히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일들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등을 따져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고통스럽다는 생각은 오해
심사숙고하여 결정한 일을 하느님께서도 축복해 주시고 기뻐하실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그 일이 온전히 하느님의 일이 되기 위해서는, 처음에 그랬듯이 중간 단계와 마무리 단계까지도 일관성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뭔가 잘 된다 싶어 갑자기 무리한 사업을 벌인다거나(명목은 좋을지 몰라도 일종의 유혹일 수도 있습니다) 나태함에 빠져든다거나 할 수 있는 여지는 언제나 있게 마련이기에 그렇습니다.
경우에 따라 어떤 일은 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거의 마감해야 할 때 어느 정도 열매가 맺혔는지 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는 살아서 그 결실을 못 볼 수 있고요. 하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는 믿음에 변함이 없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느님이 바라시는 일의 기본적인 성격은, 다른 이들에게 봉사함으로써 여러 사람들이 행복하고, 봉사하는 내가 내적인 성장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적잖은 분들이 하느님의 일을 고통스럽고 힘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데 그것은 오해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실 수만 있다면, 당신이 드셔야 할 잔을 거두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일을 위해서는 십자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종종 그 일을 수행하는 과정 중에 예상되는 십자가와 같은 어려움을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필요할 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고통을 떠넘기고 즐거워하는 가학적 창조주가 아닙니다. 그런 하느님은 과감히 거부하시기 바랍니다.
속풀이를 읽고 계신 분들 대부분은 자신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며 살아가고 싶은 분들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살아가시는 분들이라 여겨집니다.
속풀이를 읽어보시고,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분들에게는 이냐시오의 <영신수련>보다는 <결정>(슈테판 키흘레 지음, 황미하 옮김, 이냐시오영성연구소, 2014)이란 책을 권합니다.
<영신수련>은 영신수련 피정에 참여하여 함께 읽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만, <결정>은 영신수련의 선택 부분을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있어서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입니다.
그 어떤 일보다 우선, 내 모습 그대로의 나를 즐기는 것이 하느님이 바라시는 일이란 걸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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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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