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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인천교구 유영훈 신부 장례미사 봉헌

dariaofs 2014. 4. 23. 04:55

“달랑 가방 2개”로 부천장애인복지관, 미얀마 등에서 사목

 

   

▲ 21일 오전, 답동 주교좌성당에서 유영훈 신부의 장례미사가 봉헌됐다. ⓒ김용길

 

지난 18일 성금요일, 인천교구 유영훈 신부가 선종했다.

 

예수의 죽음을 묵상하는 성주간 금요일 유영훈 신부는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 언덕을 올라가신 그분의 뒤를 묵묵히 따르며, 56년 동안 정 붙여 살았던 이생 삶을 마감하였다.

 

21일 오전 10시 인천 답동 주교좌성당에서 인천교구장 최기산 주교, 정신철 주교, 동료 사제들, 그리고 고인을 기억하고 있는 많은 이들이 참여한 가운데 장례미사가 봉헌됐다.

 

마지막 사목 임지가 된 부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으로 왕성하게 일했던 유 신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복지관 관계자들은 물론 인천교구 사제, 수도자, 신자들은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장태식 신부는 강론에서, 유 신부가 선종한 성금요일에 동창 사제가 한 말을 전했다. “우리 유 신부, 진도 해상 여객선 사고로 죽은 아이들과 영혼들 데리고 하느님께 갔나봐” 하고 말할 때 한 귀로 흘렸는데, 장례미사 강론을 맡고 복음을 묵상하다가 그 동창 사제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김용길

 

유 신부는 자식처럼 아끼는 나무를 자동차에 가득 싣고 신학교, 성지, 수도원, 복지시설, 본당까지 두루 다니며 20여 년 동안 심었다고 한다.

 

사제성소의 길을 올곧게 걸어가면서 본당, 교구청, 신학교, 해외 선교지 미얀마, 마지막으로 부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최선을 다했으며, 더 나아가 4남3녀 일곱 남매의 장남 역할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장태식 신부는 “동생이 비록 일찍 가긴 했지만, 사제로서 하고 싶은 거 다하고 간 것 같다”는 유영훈 신부의 누나가 한 말을 곱씹었다고 했다.

 

유 신부의 친구인 김학수 신부(춘천교구)는 조사에서 “신학생 때 우리는 사제가 되면 신자들 위에 군림하지 않고 사는 주님의 종, 성실한 사제가 되자고 약속”해서 26년 동안 이 다짐을 실천해왔는데, 갑작스러운 선종 소식에 날벼락을 맞은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조사를 준비한 부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 지역복지팀장 김현수 씨는 유 신부가 복지관에 부임했을 때 첫 만남의 기억을 전했다.

 

“신부님이 달랑 가방 2개를 들고 복지관에 오셨을 때 참 가난하게 사시는 분이라는 것”을 느꼈는데, 유 신부와 함께 일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첫 인상이 적중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끝으로 유가족 대표 유영록 씨가 감사 인사를 전했고, 고별식 이후 유영훈 신부는 장지인 하늘의 문 묘원 성직자 묘역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