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21일 오전, 답동 주교좌성당에서 유영훈 신부의 장례미사가 봉헌됐다. ⓒ김용길
|
지난 18일 성금요일, 인천교구 유영훈 신부가 선종했다.
예수의 죽음을 묵상하는 성주간 금요일 유영훈 신부는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 언덕을 올라가신 그분의 뒤를 묵묵히 따르며, 56년 동안 정 붙여 살았던 이생 삶을 마감하였다.
21일 오전 10시 인천 답동 주교좌성당에서 인천교구장 최기산 주교, 정신철 주교, 동료 사제들, 그리고 고인을 기억하고 있는 많은 이들이 참여한 가운데 장례미사가 봉헌됐다.
마지막 사목 임지가 된 부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으로 왕성하게 일했던 유 신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복지관 관계자들은 물론 인천교구 사제, 수도자, 신자들은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장태식 신부는 강론에서, 유 신부가 선종한 성금요일에 동창 사제가 한 말을 전했다. “우리 유 신부, 진도 해상 여객선 사고로 죽은 아이들과 영혼들 데리고 하느님께 갔나봐” 하고 말할 때 한 귀로 흘렸는데, 장례미사 강론을 맡고 복음을 묵상하다가 그 동창 사제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
 |
|
ⓒ김용길 |
유 신부는 자식처럼 아끼는 나무를 자동차에 가득 싣고 신학교, 성지, 수도원, 복지시설, 본당까지 두루 다니며 20여 년 동안 심었다고 한다.
사제성소의 길을 올곧게 걸어가면서 본당, 교구청, 신학교, 해외 선교지 미얀마, 마지막으로 부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최선을 다했으며, 더 나아가 4남3녀 일곱 남매의 장남 역할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장태식 신부는 “동생이 비록 일찍 가긴 했지만, 사제로서 하고 싶은 거 다하고 간 것 같다”는 유영훈 신부의 누나가 한 말을 곱씹었다고 했다.
유 신부의 친구인 김학수 신부(춘천교구)는 조사에서 “신학생 때 우리는 사제가 되면 신자들 위에 군림하지 않고 사는 주님의 종, 성실한 사제가 되자고 약속”해서 26년 동안 이 다짐을 실천해왔는데, 갑작스러운 선종 소식에 날벼락을 맞은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조사를 준비한 부천시장애인종합복지관 지역복지팀장 김현수 씨는 유 신부가 복지관에 부임했을 때 첫 만남의 기억을 전했다.
“신부님이 달랑 가방 2개를 들고 복지관에 오셨을 때 참 가난하게 사시는 분이라는 것”을 느꼈는데, 유 신부와 함께 일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첫 인상이 적중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끝으로 유가족 대표 유영록 씨가 감사 인사를 전했고, 고별식 이후 유영훈 신부는 장지인 하늘의 문 묘원 성직자 묘역에 안장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