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4년 7월 3일 가해 성 토마스 사도 축일

dariaofs 2014. 7. 3. 00:30

 

사도 성 토마스는 아마도 갈릴래아 출신인 듯하며 쌍둥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성 토마스는 12사도 중의 한 명이지만 언제 그리고 어디서 사도로 뽑혔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그는 라자루스(Lazarus)가 죽음에서 부활할 때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요한 11,16), 최후의 만찬 때에 예수님께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여쭈어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는 해답을 들었다(요한 14,5-6).

또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발현하셨다는 말을 믿지 못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나타나시어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고 말씀하셨다(요한 20,24-27).

 

 이 때 그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이라고 고백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을 최초로 인정하는 발언을 한 사람이 되었다. 또 예수님께서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발현하셨을 때에도 그 현장에 있었다(요한 21,1 이하).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Eusebius)에 의하면 성 토마스는 나중에 파르티아(Parthia, 고대 이란의 왕국)에서 설교하였고, 또 다른 옛 전승에 따르면 그는 인도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던 중에 순교하여 마드라스(Madras) 교외 밀라포르(Mylapore)에 묻혔다고 한다.

 

성 토마스는 건축가의 수호성인이고, 1972년에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하여 인도의 사도로 선언되었다.

 

강론   :   (요한 20,24-29)

 

<토마스>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일은 예루살렘 입성 직전에 있었던 일이고,

또 최고의회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라자로를 살리신 일은

예수님의 수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첫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도 그것을 예감하고 있었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라자로의 집이 있는 베타니아를 향해서 가시려고 할 때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기다리고 있는 위험을 먼저 생각했고, 예수님을 말렸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스승님, 바로 얼마 전에 유다인들이 스승님께

돌을 던지려고 하였는데, 다시 그리로 가시렵니까?' 하자...(요한 11,8)"

 

그래도 예수님께서 베타니아를 향해서 (사실상 예루살렘을 향해서) 가시자

가장 먼저 토마스 사도가 따라나섭니다.

"그러자 '쌍둥이' 라고 불리는 토마스가 동료 제자들에게,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하고 말하였다(요한 11,16)."

토마스 사도는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또는 즉흥적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말은 예수님과 함께 죽을 각오가 평소에 되어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최후의 만찬 때 베드로 사도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요한 13,37)."

베드로 사도의 말도 진심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수난 당시에는 자기들의 말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지만,

그 뒤에는 모두 죽을 때까지 충실한 사도로 살았고,

정말로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어떻든 이런 내용들은

토마스 사도의 열정, 사랑, 충성심 등이 베드로 사도 못지않았음을 나타냅니다.

 

복음서에서 토마스 사도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그가 예수님께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이라고 고백했다는 내용입니다(요한 20,28).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은 하느님"이라고 고백한 최초의 인물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을 하느님이라고 믿는 종교이기 때문에

이 고백은 교회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야훼 하느님을 믿는 신앙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다르지 않습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분리된 것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 때문입니다.

물론 토마스 사도가 그렇게 고백했기 때문에

그런 교리와 신앙이 확립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당신 자신에 대해서 계시하셨는데,

토마스 사도가 가장 먼저 그것을 깨달았고, 믿었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성 토마스 사도 축일'을 지내면서 경축하는 것은

그의 믿음, 열정, 사랑, 충성심 등을 본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동료들의 말을

토마스 사도가 안 믿었다는 내용에만 초점을 맞춰서

그를 의심 많은 사람이라고 깎아내리는 것 같은 강론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당하고 불공평한 일이고, 편견이고 고정관념입니다.

 

예수님께서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라고 말씀하시는데,

토마스 사도가 보고서야 믿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보자마자' 믿은 사람입니다.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안 믿은 것은 다른 사도들도 마찬가지이고(마르 16,11.13.14),

다른 사도들 가운데에는 '보면서도' 안 믿은 사람도 있습니다(마태 28,17).

따라서 특별히 토마스 사도만 의심이 많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20,25)." 라는 그의 말입니다.

이 말은 표현이 너무 강해서 사람들이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여러분의 말을 (또는 여러분을) 못 믿겠다." 라는 뜻이고,

이것은 사도들이 제대로 증언하지 못했음을 나타냅니다.

다른 사람을 믿게 하려면 우선 먼저 자기가 제대로 믿어야 합니다.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갖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믿게 만들기는커녕 의심만 심어 줄 수도 있습니다.

 

또 토마스 사도가 예수님의 못 자국과 옆구리에 손가락을 직접 넣어 보아야 한다고

말한 것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먼저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기 때문에(요한 20,20) 한 말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보았습니다.

 

따라서 "결코 믿지 못하겠소." 라는 토마스 사도의 말은

"안 믿겠다."가 아니라, 반대로 "나도 보고 싶고, 나도 믿고 싶다." 라는

강한 희망을 나타낸 말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각오까지 했었던 사도이니

더 간절하게 그런 희망을 품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토마스 사도에게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신 일은(요한 20,27)

그를 꾸짖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희망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서이고,

따라서 그 일은 그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