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법, 인간의 법
아침을 먹고 민박집을 나선 길. 폰테 콜롬보(Fonte colombo)에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는데 표 파는 곳이 없다. 난감하다.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다가 기사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우선 차에 타란다.
그러더니 다음 정류장에 도착하자 저쪽 까페에 가서 알아보라는 것이다. 카페에서 버스표를 같이 판다는데 하필 거기도 표가 없다. 그
렇게 두어 군데 찾아보았지만 허사, 결국 목적지에 도착해 버렸다. “할 수 없네. 살 수 있을 때 버스표 사서 처리해요.” 선글라스를 낀 멋진 버스 기사가 우리를 내려 주면서 말했다.
“음, 이탈리아에서는 버스 기사도 멋있단 말이야!”
▲ 폰테 콜롬보 성지를 가리키는 표지판.ⓒ김선명 |
짐짓 감탄을 했지만 선글라스보다 멋있는 것은 이네들의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표 없이 버스를 탈 수 없는 것이 규칙이라면 그 규칙도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고 누구나 믿음에는 믿음으로 응답한다는 것이 이네들의 사고방식 아닌가 싶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각박해지는 곳에서는 점점 더 규칙과 법을 따지게 되지만 그런 곳일수록 살기 좋은 곳은 못 되는 것이다.
폰테 콜롬보, 작은 형제들의 규칙서를 기록한 곳
폰테 콜롬보 성지는 해발 549미터쯤 되는, 참나무가 울창한 산 속에 자리하고 있다. 이 산의 본래 이름은 라이니에로(Rainiero)산이었는데 1217년 이곳에 왔던 성인이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어 불렀단다.
성인은 산에 오르다 아마 목이 말랐던 게지. 그 참에 맑은 샘물을 발견했는데 하얀 비둘기들이 거기에 와서 목을 축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폰테 콜롬보는 ‘비둘기의 샘’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작은 형제들의 규칙서를 기록한 장소로 유명한데 ‘프란치스칸들의 시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나이 산에 빗대어 프란치스코회원들의 규칙서가 탄생한 이곳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것이 1222년 말에서 1223년 초의 일이니까 성인이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의 일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회원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학식 있는 형제들을 중심으로 규칙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프란치스코는 괴로워한다.
규칙이라면 복음서로 충분하지 않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형제들이 많았다. 사랑이 있으면 충분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사랑만으로 다 되는 건 아니라고 믿는 이들도 있는 법이다.
▲ 폰테 콜롬보 성지의 성당과 광장.ⓒ김선명 |
▲ 프란치스코에게 회칙을 일러 주는 그리스도.ⓒ김선명 |
그 옛날 프란치스코가 이곳에 왔을 때는 막달레나 경당이라고 부르는 작은 성당과 1225년 눈병을 치료한 작은 건물뿐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프란치스코와 시에나의 베르나르디노 성인에게 봉헌된 성당과 수도원 건물이 순례자를 맞는다.
성당 내부 왼쪽 벽에는 수도회 규칙을 기록하는 프란치스코의 모습을 담은 나무 조각품이 걸려 있다.
1222년 성인은 레오 형제와 교회법을 잘 아는 다른 형제와 함께 이곳에 온다.
40일 간 바위 동굴에서 기도와 단식을 한 다음 회칙을 레오 형제에게 구술했는데 전설에 따르면 예수님이 성인에게 나타나 회칙을 일러 주었다고 한다.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 판을 받은 모세처럼 프란치스코도 하느님으로부터 회칙을 받았다는 얘기다.
그때 예수님이 나타난 나무가 동굴 근처에 있었는데 1622년 폭설 때문에 등걸이 부러지고 말았다.
지금도 보존되어 있는 그루터기는 순례자들이 던져 넣은 기도 지향 쪽지들로 빼곡하다. 부러진 나무를 다듬어 당시 장면을 새긴 것이 지금 성당에 있는 이 작품이라고 한다.
“작은 형제들의 규칙과 삶은 이것이다. 즉 자기 소유는 아무것도 없이 정결과 순명을 살면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지키는 것이다.”
바위 동굴에 잇대어 세워진 성 미카엘 기도소에 이런 말씀이 새겨 있다. ‘아무것도 소유함 없이 정결과 순명으로 복음을 사는 것.’ 작은 형제들의 삶이 이렇게 무서우리만큼 단순하게 요약된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의지하는 법이며 보이지 않는 것, 가령 사랑이나 믿음이나 선의 같은 것들은 소유하지 않는 빈 마음에 깃드는 법이다.
복음서 말고 따로 규칙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았던 성인의 마음은 바로 그런 것이었으리라. 말이 많아지고 글이 길어질수록 사람이 숨 쉴 공간은 줄어드는 거니까. 그러나 이 단순한 진리를 잊으면 사람은 보이는 것만 찾으며 살게 된다.
내가 떠나온 도시의 높은 건물과 도로와 차들, 풍족한 살림살이를 생각한다. 그것들을 지탱하는 것은 도로교통법이니 건축법이니 헌법이니 하는 것들이지만 정작 그것들은 사람들의 선의라는 바탕 위에 서 있는 것이다.
내가 사는 나라는 믿음이라든가 사랑, 선의 같은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점점 삭막한 곳이 되어 가고 있다. 어쩌면 법조차 법 노릇을 못하고 재력과 권력, 무력이 이미 법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답답한 마음으로 동굴과 맞닿은 성 미카엘 기도소에 들어간다. 더할 나위 없이 단촐한 제대와 동굴이 순례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동굴 안에는 나무로 된 십자가가 하나 놓여 있어서 여기가 성인이 앉아 기도했던 곳인가, 짐작한다.
성 프란치스코가 작은 형제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주님께 들었던 곳. 무릎을 꿇고 잠시 머문다. ‘주님, 제가 사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보이는 것만 찾아 살고 있습니다.... 더 높이 더 빨리 더 편하게 더 풍족하게 사느라 형제들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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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성인이 기도한 동굴(왼쪽), 미카엘 기도소의 제대.ⓒ김선명 |
이곳을 떠나 리에티로 가는 길은 3킬로미터가 넘는 산길, 그런데도 한참을 여기서 머뭇거리는 것은 보이는 모든 것을 지탱하시는 그분, 하느님 곁에 머물고 싶은 순례자의 마음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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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수 신부 (이냐시오)
성바오로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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