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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신학자] 1. 한스 우어스 폰 발타자] 1

dariaofs 2015. 1. 1. 02:00

한스 우어스 폰 발타자 "세상의 아름다움 속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할까?”

 

안녕하세요, 이번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연재를 하게 된 조민아입니다. 이 글은 우리신학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갈라진 시대의 기쁜소식>에 2010년 12월부터 연재했던 글을 다시 다듬어서 소개하는 글입니다.

 

딱딱하고 지루해지기 쉬운 신학 담론들을 여러분들께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무엇보다도, 재미있게 풀어보자!’ 로 원칙을 정했습니다.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어느 조그만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에 둘러 앉아 막걸리를 건네듯, 혹은 따땃한 아랫목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방금 찐 고구마를 돌리 듯, 편안~~하게 신학 이야기를 풀어 볼께요.

 

지금부터 제가 소개할 신학자들의 이야기는, 막걸리처럼 시원할 수도, 밤고구마처럼 달콤할 수도 있지만,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들이키면 심하게 취해 이 세상인지 딴 세상인지 모를 수도, 또 씹지 않고 삼키면 체해서 생고생을 할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 될 거에요.

제 관심을 이제껏 끌어 온 것들은 제도교회와 그리스도인들 개개인의 삶이 부딪히는 다양한 공간들과 그 마찰의 형태들에서 야기된 질문들이에요.

 

수백 년 그리스도교 전통과 제도 교회 속에서 형성된 신학언어와 문법과 상징들이 어떻게 개인의 삶에 흡수되고 갈등을 일으키는가, 또 그 영향들이 개개인에 의해 어떻게 창조적으로 수용되고 재구성되고 변화하는가가 제 주된 연구 분야지요.

제가 여러분들께 소개하고 싶은 신학자들은 신학적 미학, 성례전신학, 철학적신학, 여성신학, 해방신학, 흑인여성신학, 탈식민주의 신학 형성에 영향을 끼친 학자들로서,

 

특히 교회 전통이 개개인의 특수한 삶과 맞닿는 접점들을 섬세하고 날카로운, 혹은 웅장하고 심원한 신학적 언어로 표현해 오신 분들이에요.

 

이 중에는 이미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 지금도 활발히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도 있어요. 가톨릭 신학자들도 있고, 개신교 신학자들도 있구요. 소위 ‘주류’ 신학자들도 있고, ‘변방’의 신학자들도 있어요.

세상과 사람의 아름다움을 통해 하느님의 흔적을 발견한 신학자

 

   
▲한스 우어스 폰 발타자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 첫 신학자는 한스 우어스 폰 발타자 (Hans Urs von Balthasar, 1905-1988)입니다.

 

스위스 태생의 신학자인 폰 발타자는 대표적인 20세기 가톨릭 지성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지요.

 

폰 발타자의 글들은 풍부한 시적인 감수성과 아름다운 은유들로 채워져 있는데, 젊은 시절부터 깊게 문학에 심취했던 그의 이력이 글쓰기에 반영된 듯 하네요.

 

1936년에 예수회 사제 서품을 받고, 1939년에는 스위스 바젤 대학의 대학생 지도신부가 되는 폰 발타자는,

 

 바젤 시절 그의 신학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두 인물인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와 아드리엔느 폰 스페이어(Adrienne von Speyer, 1902-1967)를 만나게 됩니다.

 

개신교 신학의 거인인 칼 바르트에 관해서는 나중에 따로 지면을 할애하도록 하고, 폰 스페이어에 관해서 우선 이야기해 볼께요.

의사, 평신도 영성가, 작가, 신비주의자라는 다소 이채로운 경력을 가진 여성 폰 스페이어는 폰 발타자와 긴 시간 우정을 나누며, 그의 신학에 근간을 이뤘다 해도 무방할 만큼 중요한 영성적 자원을 공급합니다.

 

폰 스페이어는 특히 성삼위와 성인들과 연관된 많은 신비주의적 체험을 겪는데, 대부분의 체험들은 폰 발타자에 의해 기록되고 출판되었습니다.

 

 폰 스페이어의 영성은 “세상으로 파견된 그리스도교” 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스도인들의 의무는 다름 아닌 세상 한가운데로 나아가 그리스도를 따르며 복음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라 주장했고,

 

바로 그 믿음대로 살기 위해, 폰 발타자와 함께 재속 수도공동체인 ‘요한 공동체(Johannesgemeinschaft)’를 설립하기도 했죠. 결국 이 공동체와 예수회와의 갈등으로 인해 폰 발타자는 예수회를 떠나게 되긴 했지만요.

예수회 탈퇴 이후 폰 발타자는, 폰 스페이어와의 교류, 또 세상과 그 세상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저작 활동에 전념하게 되는데요,

 

 대표작으로는 3부작 15권의 책으로 출판 된 <제 1부, 주님의 영광: 신학적 미학> (Herrlichkeit. Eine theologische Ästhetik), <제 2부, 신의 드라마> (Theodramatik), <제 3부, 神-學>(Theo-logik) 등이 있죠. 폰 발타자의 3부작은 1950년대에 저술을 시작하여 1980년대 완간되기 까지 수십 년의 세월이 투자된 방대한 신학서적입니다.

세상과 사람의 아름다움을 통해 하느님의 흔적을 발견하고 하느님이 세상 속에서 역사하는 방식을 배우고자 했던 폰 발타자.

 

폰 발타자 신학의 핵심이 되는 질문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현상과 현실들을 어떻게 그리스도라는 중심적 계시와 연관지을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궁금하게 여기고 고민하는 문제겠죠? 그리스도교 전통의 단일성과 다양성 뿐 아니라, 그 전통의 외부, 즉 시인들과 철학자들,

 

그리고 예술가들의 글과 작품에서 드러나는 독창적이고도 풍부한 인식과 영감을 어떻게 이해하고 신앙의 영역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폰 발타자는 ‘유비적 사유’ 라는 신학방법론을 통해 이 질문에 응답하고자 합니다.

 

   
 

하느님이 인간과 관계 맺으려고 인간이 된 것이 ‘그리스도’

 

유비적 사유는 폰 발타자가 살았던 당시 신학경향을 지배하고 있던 초월신학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합니다. 초월신학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초월적인 것에 대한 갈망을 간직한 채 창조되었기에,

 

 인간의 정신은 태어날 때부터 무한하고 초월적인 지평인 신을 향하도록 운명지워졌다고 주장하는 신학경향입니다.

 

 폰 발타자는 이러한 사고가, 자칫 신의 초월성을 유한한 인간의 본성에 함몰시켜 버릴 수도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봅시다.

 

 인간의 자기실현이 곧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이라 선언해 버린다면, 하느님의 계시 또한 인간의 정신에 속해 있다는 논리로 귀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된다면, 하느님과 인간은 어떻게 다른가요?

 

발타자는 초월신학의 사고체계가, 무한한 하느님과 유한한 인간의 차이, 절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 사이의 심연, 창조자와 피조물 간의 극복 될 수 없는 거리를 상쇄시켜 버릴 위험이 있다고 우려합니다.

폰 발타자에게 있어 하느님은 상대화하거나 파괴할 수 없는 자존적인 존재입니다. 늘 언제나, “스스로 있는 자”(탈출 3,14)이신 거죠. 따라서 폰 발타자는, 초월신학과는 달리 신학의 출발점을 인간의 주체성,

 

인간 정신의 자기실현에 두지 않고 하느님과 결코 같아질 수 없는 인간이 하느님을 지향할 때 드러나는 긴장관계에 두었죠.

 

폰 발타자가 생각하는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동시에 닮지 않은 ‘유비적’존재입니다. 인간이 자신이 갖고 있는 유한성을 넘어서서 하느님께 나아간다면,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에게 천착되어 끊임없이 하느님께 나아가지 않는다면, 인간은 하느님과 닮지 않은 존재입니다.

 

‘유비적 사유’란 이렇듯 인간이 본질적으로 신과 동격이 될 수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 불가능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일 때 발생하는 긴장관계에 관한 첨예한 성찰을 요구하는 신학방법론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이 해소될 수 없는 긴장은 언제나 불확실성을 내포하지만, 세상은 결국 하느님의 뜻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죠. 인간과 결코 같아 질 수 없는 존재인 하느님이 인간과 관계를 맺기 위해 인간의 모습을 취하게 된 사건이 곧 그리스도입니다.

 

하느님은 이렇듯 인간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해 인간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 살아간다면, 인간은 하느님과 닮아 갈 수 있습니다.

 

마치 갓난아기가 어머님의 미소를 바라보며 의식을 형성해 나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인간이 사랑을 바라는 한 인간 또한 아름다워진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은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1요한 4,8). 인간의 존재를 가능케하는 하느님이 곧 사랑이라는 사실은 세상의 다양한 현상들을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합니다.

 

우선, 사랑은 서로 다른 것을 하나로 묶는 힘이기에 갈등 속에 존재하는 피조물들도 결국 한분이신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됩니다.

 

둘째,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므로 인간이 사랑을 바라는 한, 인간 또한 아름다워집니다.

 

셋째, 사랑은 선하므로 인간이 사랑을 바라는 한, 인간 또한 선해집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은 참된 것이므로, 인간이 사랑을 바라는 한, 인간 또한 참되어집니다.

 

바로 이것이 폰 발타자의 ‘유비적 사고’ 갖고 있는 불확실성 근저에 자리잡은 ‘무조건적 긍정’입니다. 현실은 불확실하다 할지라도,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리란 희망은 언제나 존재하는 거죠.

이제 이 유비적 사유가, 어떻게 앞서 이야기 한 폰 발타자의 신학적 질문과 또 그의 주요 저작들과 연결되는지 살펴볼까요?

 

폰 발타자 3부작의 1부인 <신학적 미학>은, 우리가 어떻게 세상과 사람의 아름다움을 통해 하느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지 설명합니다.

폰 발타자에게 아름다움을 인식한다는 것(미학)은 하나의 사물이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다양하고 구체적이고 유한한 존재들로 바라보되, 그 본질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은 곧 하느님에 관한 질문과 연관되는 것이죠.

 

개개의 존재들이 갖고 있는 형상과 의미는 그리스도와 만나 하느님의 역사로 빨려들어 갈 때에야 비로소 본질과 연결되어 참된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아름다운 모든 것들, 시와 철학과 예술작품은 하느님의 뜻을 담고 전달 할 수 있는 풍부한 명상의 자료로서 신학적 연구와 신앙적 성찰의 대상이 될 수 있죠.

 

2부 <신의 드라마>는 하느님이 어떻게 세상과 관계하고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지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와 만나 하느님의 역사 속에 참여하게 되는 세상의 현상과 사건들은 고정되어 있는 하나의 형상이 아닙니다.

 

늘 진행되는 사건들이죠. 폰 발타자는, 예수 그리스도 계시의 사건이, 하느님과 그의 피조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인간 역사 드라마의 원형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성서에 드러난 계시의 역사는 인간이 현재 겪고 있는 역사적 현상들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인간이 지향할 바를 알려주는 궁극의 드라마인 것입니다.

마지막, <神-學>은 3부작의 결론이라 할 수 있죠. 여기서 폰 발타자는 인간의 드라마가 하느님의 드라마와 결국 어떻게 만나 완성되는지 설명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드라마는 인간 행위의 모든 척도가 사랑이신 하느님의 계획 속에 놓여 있다는 진리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은 자신을 드러내셨고,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과 접촉하며,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의 드라마를 보호함과 동시에 변화시키는 진리를 이해하는 것,

 

 이것이 폰 발타자 신학의 핵심입니다. 이 유비관계 속에서 하느님을 알아가고 닮아가는 것이 신학의 목표이지요.

감각과 예술의 영역을 신학의 영역으로

이제 폰 발타자 편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네요. 짧은 지면에 요약하여 정리하다 보니, 흥미롭고도 중요한 많은 것들을 놓친 것 같아요.

 

그리스도교 중심적인 폰 발타자의 신학체계는 종교간 대화를 시도하는 신학자들과 종교학자들에 의해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감각과 예술의 영역을 신학의 사고 영역 안으로 끌여들여 신학의 언어를 풍부하게 했다는 점에서 그가 후대의 신학자들에게 남긴 공헌은 주목할 만합니다.

폰 발타자가 운명을 달리한 해는 1988년입니다. 그 해 6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폰 발타자를 추기경으로 임명하죠.

 

이미 한차례 추기경 직책을 고사한 경력이 있는 그는, 이번 만큼은 교황과의 우정과 순명에의 요구를 받아들여 수락하려 했으나, 서임되기 바로 이틀 전 사망하고 맙니다.

 

 폰 발타자에게 죽음은 친절한 얼굴로 다가 온 듯합니다. 죽기 직전 그는 아침 미사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하죠.

 

그의 책상에는 성탄절 선물로 지인들에게 주기 위해 쓰던 책, <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Wenn ihr nicht werdet wie dieses Kind)의 원고가 펼쳐져 있었다고 합니다.

폰발타자에 관한 서적은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그의 신학사상을 다룬 책들이 몇 권 출판되었습니다.

 

 <감각과 초월: 발타살의 신학작 미학> (김산춘 저, 분도출판사), <영성과 신학적 미학> (김대식 저, 한국학술정보), <신학적 미학> (리차드 빌라데서, 손호연 역, 한국신학 연구소)입니다.

 

 

 

   
 
조민아 교수
미국 에모리대학에서 구성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셀 드 세르토의 시각을 확대 해석해 중세 여성 신비가 헤데비치(Hadewijch)와 재미 예술가 차학경의 글을 분석한 연구로 논문상(John Fenton Prize)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