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 9.2-10)
신비에 가득 찬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매우 어려운 일이지마, 그것은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접하던 제자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선언하면서 그 직후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향하시려는 발걸음을 멈추게 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리스도로부터 사탄이라고 지적을 받았으며,
그 후에도 자기들 중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인지 논쟁하여 제자들 모두가 주의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설교나 기적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고 들으면서도 그들은 왜 예수님의 신비를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을까요?
그 중 한 가지의 이유는, 예수님의 신비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는 것도 있지만 다른 하나는 제자들의 생활태도와 연관이 있습니다.
이들은 십자가로 향하는 발걸음을 반대하고, 자기들의 명예, 지위, 권세를 찾으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에피소드도 그것을 드러냅니다.
산에 오르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일행 앞에서 변모하시고, 모세와 엘리야와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이것을 본 베드로는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이 그 에피소드의 본질을 이해한 상태 속에서 나온 발언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초막을 짓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베드로에게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라고 하는 구름 속으로부터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기서 제자들의 생각과 하느님의 생각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초막’이란 비록 그것이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어도, 바람과 비의 혹독함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가 있습니다. 그 안에서 사람은 마음의 긴장을 풀고 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 인간이 받은 행복을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고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그것은 우리들 인간의 힘의 상징도 됩니다.
또 그것은 생존 경쟁에 대한 승리와 성공의 표징도 됩니다. 그러니 초막을 짓는 것은 지상의 행복을 찾고자 하는 베드로의 갈망입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이것은 예수님께 시선을 돌리고 예수님의 생활태도를 배우라는 호소입니다.
이분은 십자가상의 제사를 통해서 하느님과 사람을 사랑하신 분입니다 .이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유영근 야고보 신부(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성당 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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