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코는 사해 북쪽 15km 지점에 위치한 오아시스 도시다.
동쪽은 요르단강이 감싸고 서쪽은 비옥한 땅으로 과실수와 종려나무가 우겨져 있다.
원래 요르단 영토였는데 1967년 '6일 전쟁' 때 이스라엘이 점령했고 돌려주지 않았다.
예리코는 해수면보다 250m 가량 낮기에 더 없이 포근하다.
그러기에 기원전 9천년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인 것이다.
아랍인들은 예리코를 '아리하'라 발음한다.
구약성경의 예리코는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가 정복했다.(기원전 14세기)
하지만 군사들과 싸워서 함락한 것이 아니다.
사제들이 불어내는 나팔소리와 백성들의 고함소리에 성벽이 저절로 무너진 것이다(여호6.20).
하느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 기적을 베푸셨기 때문이다.
이후 여호수아 군대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잔인한 학살을 감행한다(여호 6.21).
왜 그랬을까? 과잉충성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신약성경의 예리코는 세관장 자캐오와 연관되어 등장한다.
키가 작았던 그는 자신의 핸디캡 때문에 예수님을 뵙게 되는 행운을 만났다.
"주님 이제부터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한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예수님의 방문에 자캐오는 순수와 감사로 응답한다.
잔인했던 여호수아와는 대조적이다.
그것은 그대로 구약과 신약의 차이가 된다.
자케오가 세관장이었다면 세리들이 많았다는 의미다.
경제활동이 활발했기에 세금 걷는 이가 많았을 것이다.
예수님시대의 예리코는 그만큼 큰 도시였다.
소경 바르티매오가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뜬 곳도 이 도시였다(마르 10.46).
헤로데 대왕은 겨울이 되면 예루살렘을 떠나 예리코에서 지냈다고 한다.
죽음 역시 기원전 4년 예리코에서 맞이했다.
그만큼 예리코를 좋아했던 것이다.
1950년부터 시작된 발굴에서는 헤로데의 겨울궁전을 찾아냈고 일부를 복원시켰다.
건축양식은 전부 로마식이었고 헤로데의 취향이 잘 드러난 건물이라고 한다.
한편 '술탄의 샘'이라 불리는 오아시스에서는 지금도 일급수의 물들이 솟고 있으며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줄어들지 않는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돌로 쌓은 원시적 제단과 뼈로 만든 용기가 발견되었는데
탄소연대 측정결과 기원전 9천년경의 것으로 밝혀졌다.
구약성경에서는 이 우물을 '엘리사의 샘'이라 불렀다(2열왕 2.21).
현재의 예리코는 분쟁지역이라 접근이 쉽지 않다.
~ 신은근 바오로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