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또는 보니파시오)는 675년경 영국 웨식스(Wessex)의 크레디톤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주로 수도원에서 교육받았다. 그는 불과 7세 때에 엑서터(Exeter)의 베네딕토 수도원 학교에 들어갔고, 14세 되던 해에는 너슬링(Nursling)의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윈버트(Winbert)의 지도하에 공부하였다.
그는 너슬링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여 30세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수도원 학교의
교장이 되어 교수생활과 설교자로서의 생활이 성공하자 프리슬란트(Friesland)의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716년의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이렇게 되자 그는 718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2세(Gregorius II)가 계시는 로마(Roma)로
갔으며, 여기서 교황으로부터 라인 강 동쪽에 사는 이교도들을 개종시키라는 명을 받고 길을 떠났다. 이때부터 그는 보니파티우스로 개명하고 3년
동안 성 빌리브로르두스(Willibrordus, 11월 7일)를 도와 프리슬란트에서 선교사로 활약하였다.
그가 722년 가장 이교도적인 헤센(Hessen)으로 가서 아뫼네부르크에 베네딕토회 최초의 수도원을 설립하고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주는 등 선교활동의 대성공을 거두게 되자, 교황은 보니파티우스를 로마로 불러들여 주교로 서품하고 교회 법령집과 독일의 모든 수도자들과 관리들에게 보내는 추천서를 써주었다.
이 서한은 그의
독일 선교 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특히 프랑크 왕국의 재상인 카를마르텔(Karl Martell)의 보호를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보니파티우스는 카를마르텔의 보호를 받으며 723년부터 725년까지 제2차 헤센 선교에 나섰는데, 이때 그는
가이스마르(Geismar)에서 이교도들이 신성시하는 떡갈나무를 베어 경당을 짓는 데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 사건을 계기로 개종자들이 확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후 그는 튀링겐(Thuringen)에 가서 오르트루프(Ohrdruf)에 수도원을 세웠고, 영국의 수도자들을 독일의 선교사로
파견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또한 그는 여러 곳에 수도원을 세웠다. 744년에 그와 성 스투르미우스(Sturmius, 12월 17일)는
풀다(Fulda)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 수도원은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북유럽에서 가장 큰 중심 수도원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그는 독일과
프랑크의 교황대사로 임명되었고, 피핀을 프랑크의 유일한 통치자로 세우는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성 보니파티우스는 754년에
마인츠(Mainz)의 대주교직을 사임하고 성 빌리브로르두스의 사후 이방 관습에 다시 떨어진 프리슬란트를 재건하는데 여생을 바쳤다.
그가
프리슬란트의 도쿰(Dokkum) 근처 보르네 강변에서 개종자들에게 견진성사를 주려고 준비하던 중에 이교도들의 급습을 받아 살해되었다.
'게르만족의 사도' 또는 '독일의 사도'로 불리는 그의 축일은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1874년부터 전 교회에서 기념하고
있다.
강론 : (마르 12,35-37)
<메시아의 나라>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마르 12,35-37)
예수님의 말씀을 간단하게 줄이면, "'메시아의 나라'는
다윗 왕조가 복원되어서 그 후손들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다."입니다.
다윗이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불렀다는 말은,
그가 예언하고 희망한 '메시아의 나라'는
자기의 왕권이 보존되고 계승되는 나라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다윗이 예언하고 희망한 '메시아의 나라'는
인간의 왕국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였습니다.
만일에 율법 학자들이 생각한 것처럼
다윗의 자손 가운데에서 메시아가 나와서 다윗 왕국을 회복시키는 것으로 그친다면,
그 나라는 다윗 왕실과 지배 계급 사람들에게만 좋은 나라가 될 뿐입니다.
일반 백성들에게는 그게 좋은 일이 될 수가 없습니다.
사실 로마제국이 다스리든지 헤로데 가문이 다스리든지 다윗 왕실이 다스리든지 간에
일반 백성들의 삶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메시아 시대', 또는 '메시아의 나라' 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예수님은 정말로 다윗의 자손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가 다윗 가문의 족보라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예수님의 족보가 아니라 요셉의 족보이고,
요셉의 족보에 예수님의 이름이 들어갔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것은
'메시아' 라는 뜻으로 그렇게 부르는 것이고, 진짜로 다윗의 자손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 라는 말은,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였다." 라고 번역을 바꿔야 하는데,
어떻든 이 말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은, 당시의 일반 백성들이 메시아를 갈망하긴 했지만,
속마음으로는 다윗 왕조가 회복되기를 기다린 것이 아니었음을,
또 그들이 희망하는 '메시아의 나라'는 다윗 왕국이 아니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지배자나 지배 계급 같은 것은 없는 나라,
모든 압박과 억압에서 해방되는 나라를 희망했습니다.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다윗 시대를 보면, 끊임없이 전쟁을 했던 시대였고,
백성들은 전쟁 때문에 고통을 겪었던 시대였습니다.
그 뒤에 솔로몬 시대를 보면, 수많은 토목 건설 사업을 했던 시대였고,
그래서 백성들은 무거운 세금과 강제 노동 때문에 고통을 겪었던 시대였습니다.
백성들이 그런 나라를 희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메시아의 나라'는 다윗 왕국이 아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실 때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
'메시아의 나라'는 가난한 이, 잡혀간 이, 억압받는 이가 없는 나라,
모두가 해방되고, 모두가 행복하고, 모두가 기뻐하는 나라입니다.
왕과 지배 계급 사람들만 행복하게 되는 나라가 아닙니다.
묵시록에서는 종말의 '하느님 나라'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묵시 21,3-4)."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께서 직접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왕이 필요 없습니다.
지배 계급 같은 것도 없습니다.
모든 시민이 하느님의 왕정에 참여하기 때문에
전부 다 왕이 되고 지배자가 되는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메시아의 나라'로 바꿔서 생각해도 됩니다.)
또 교회가, 또는 교회의 지도자가 다스리는 나라도 아닙니다.
"나는 그곳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묵시 21,22)."
하느님 나라에 성전이 없다는 것은 교회가 없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없으니 교회의 지도자도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지금도 교회의 지도자들은
지배자들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들'입니다(마르 10,43).
그런데 하느님의 나라(메시아의 나라)가 그런 나라라고 해서
지금의 인간 세상의 모든 제도와 모든 통치가 다 악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선한 통치자도 있고, 악한 통치자도 있습니다.
선한 제도도 있고, 악한 제도도 있습니다.
어떻든 그런 것들은 모두 종말이 오기 전까지의 임시 제도일 뿐입니다.
신앙인들은 예수님(하느님)을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예수님(하느님)만을 진정한, 또 유일한 지배자로 섬긴다는 뜻입니다.
세속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세속의 법과 제도를 따르긴 하지만,
영적으로는 예수님(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예수님(하느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서 완성되고,
예수님(하느님)의 통치권이 완전히 실현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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