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8월 20일 나해 연중 제20주간 목요일(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dariaofs 2015. 8. 20. 05:30

 

테셸랭 소렐(Tescelin Sorrel)과 몽바르드 영주의 딸 알레(Aleth)의 아들인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 또는 베르나르도)는 부르고뉴(Bourgogne) 디종(Dijon) 근교의 가족 성(城)인 퐁텐(Fontaine)에서 일곱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그는 샤티용(Chatillon)에 가서 공부하면서 청운의 꿈을 펼치고 있었으나, 1107년 어머니의 죽음으로 많은 충격을 받고서 수도생활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원래 시토회의 설립자 3명 가운데 한 명은 아니었지만 흔히들 그를 시토회의 설립자로 부른다. 그가 새로운 수도회인 시토회에 입회한 해는 1112년 4월인데, 그 때 그는 자기 형제 4명을 비롯하여 모두 30명의 친척, 친구들과 함께 베네딕토회 규칙의 엄격한 해석을 따르기 위하여 1098년에 설립된 시토회에 들어갔다. 그들은 원장이던 성 스테파누스 하딩(Stephanus Harding, 4월 17일)으로부터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1115년에 성 베르나르두스는 성 스테파누스 하딩의 지시에 따라 12명의 수도자와 함께 부르고뉴와 샹파뉴(Champagne)의 경계지역에 있는 클레르보라는 고립된 계곡에 수도원을 세우기 위해 파견되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엄격한 규율 때문에 약간의 어려움에 봉착하였으나, 그의 높은 성덕으로 수많은 제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이때 그 수도원의 이름을 발레 답신트에서 클레르보로 바꾸었고, 당시 68개의 시토회 수도원의 모원으로 만들었다.

그 후 성 베르나르두스는 자신의 학덕과 지덕을 활용하여 수도원의 외부 일을 처리하게 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유럽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 중의 하나가 되어 통치자와 교황의 자문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그는 대립교황인 아나클레투스 2세의 요구에 대항하여 1130년의 교황 인노켄티우스 2세(Innocentius II) 선출의 합법성을 지지하였다. 또한 그는 로테르 2세를 황제로 인정하도록 롬바르디아(Lombardia)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1140년부터 그는 공적으로 설교하는 일을 시작하여 놀라운 명성을 얻었다.

1145년에는 전에 클레르보 수도원의 수도자였던 에우게니우스 3세(Eugenius III)가 교황으로 선출되자, 그는 교황직의 의무에 대한 글을 교황 앞으로 보내어 로마(Roma) 교황청의 남용을 자제하고, 교황이 항상 목전에 두어야 할 종교적 신비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였다. 교황 에우게니우스는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랑그도크(Languedoc)에 파견하여 알비파(Albigenses) 이단을 대항하여 설교토록 하였고, 프랑스와 독일에 제2차 십자군 원정의 열기를 북돋우는 특사로 임명하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활동과 심각한 건강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왕성한 저술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서한과 "아마(Armagh)의 성 말라키아의 생애" 그리고 "신애론"이 영어로 번역되었고, 자신의 수도자들에게 행한 강론은 "아가"로 묶었다. 그는 자신의 저술과 설교에서 성서를 광범위하게 인용하는 이유를 "말씀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박아 주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그의 저서와 신심은 오늘의 신자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그는 다양한 기질과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으며, '꿀처럼 단 박사'(Doctor Mellifluus)란 칭호를 얻었다. 1153년 8월 20일 클레르보에서 선종한 그는 1170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Alexander III)에 의해 시성되었고, 교황 비오 8세(Pius VIII)는 1830년에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하였다. 그는 스콜라 학파 이전의 신학자이며, 때로는 '마지막 교부'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문장은 꿀벌통이고 양봉업(자)의 수호성인이다.

 

강론   :    (마태 22,1-14)

 


<혼인 잔치의 비유>


8월 20일의 복음 말씀은 마태오복음 22장 1절-14절, '혼인 잔치의 비유'인데,

초대받은 사람들이 오지 않은 것은,

이스라엘이 메시아의 복음 선포에 응답하지 않은 것을 나타내고,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잔치에 참석하는 것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음을 나타냅니다.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쫓겨나는 이야기는,

부르심에 응답한 것으로 그치면 안 되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마태오복음에서 '혼인 잔치의 비유'는,

바로 앞에 있는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마태 21,33-46)와

뜻과 주제가 거의 같습니다.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에서,

소작인들이 소작료를 내지 않으려고 종들을 매질하고 죽인 일과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

잔치에 참석하기를 싫어 한 사람들이 종들을 때리고 죽인 일은 같은 일입니다.

이것은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인 이스라엘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데려다가 잔칫방을 채우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에서는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마태 21,43)."

라고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초대받은 사람들이 잔치에 참석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가는 것은(마태 22,5),

구원을 얻는 일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세속의 일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런 모습은 오늘날에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 변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휴가철을 맞아서 가족들과 (또는 친구들과) 해수욕장에 가기로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느라고 어쩔 수 없이 주일을 지키지 못했다."

이것은 임금의 초대를 무시하면서

밭으로 가고, 장사하러 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주일을 지키지 못했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못 지킨 것이 아니라 안 지킨 것입니다.)


(만일에, "돌아와서 고해성사 보면 되지." 라고 처음부터 생각하고,

그런 생각으로 주일을 안 지킨 것이라면, 그것은 이중으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주일을 안 지킨 죄와 성사 모독죄.)


그런데 '혼인 잔치의 비유'를 겉으로만 보면,

처음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잔치 참석을 거부했기 때문에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초대를 받은 것처럼,

즉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했기 때문에

복음의 은총이 이방인들에게로 넘어간 것처럼 표현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는(지금의 그리스도인은) 유대인들의 대타도 아니고, 대역도 아닙니다.


만일에 이스라엘이(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복음을 받아들였다면,

그래서 모두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신자가 되었다면,

그러면 이방인들은 복음을 들을 기회조차 없게 되었을까?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루카 24,47)."

이 명령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든지 거부하든지 간에,

그것과 상관없이 사도들이 실행해야 할 명령입니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원래 하느님의 뜻이었고, 계획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이미 당신의 뜻을 밝히셨습니다.

"...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12,3)."


그래서 길거리에 서 있다가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처음에 초대받은 사람들 '대신에' 초대를 받은 것이 아닌 것이 됩니다.

초대장이 전달된 순서가 그렇게 되었을 뿐,

그들도 처음부터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내용을

8월 19일의 복음 말씀이었던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마태 20,1-16)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비유를 보면 밭 주인이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 아홉 시, 열두 시,

오후 세 시, 오후 다섯 시, 이렇게 다섯 번 장터에 가는데,

아무 계획도 없이 일꾼들을 샀다가

일을 하다 보니 사람이 모자라서 다시 간 것이 아니라,

'모든 일꾼들'을 다 불러 모으려고 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산 일꾼들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그 뒤에 산 일꾼들은 이방 민족들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길거리에 서 있던 사람들도 정식으로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한다면,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쫓겨난 일은 충분히 설명이 됩니다.

초대를 받은 뒤에 혼인 예복으로 갈아입을 시간이 있었는데도,

안 입었기 때문에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못 입은 것이 아니라 안 입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길거리에 서 있다가 초대를 받았는데,

그 한 사람만 예복을 안 입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입고 있었던 것도

혼인 예복으로 갈아입을 시간이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예복을 안 입은 사람이 밖으로 쫓겨나는 모습에서 소금에 관한 말씀이 연상됩니다.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 5,13)."

혼인 예복을 안 입은 사람은 제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은 사람,

즉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초대하셨고,

모든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데,

안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과 자격을 갖추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은 못 들어갑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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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에, 판관 입타가 주님께 함부로 서원을 했다가

자기 딸을 제물로 바치게 된 이야기가 나옵니다(판관 11,29-39ㄱ).

<매일미사> 책의 <오늘의 묵상>에서는

주님께 서원한 것은 절대로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는 이야기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설명입니다.

입타는 자기 목숨을 걸고 서원한 것이 아니라 남의 목숨을 걸고 서원했습니다.

(주님의 뜻은 생각하지도 않고, 살인을 하겠다고 자기 마음대로 서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서원은 그 자체로 무효입니다. 당연히 취소되어야 합니다.

<매일미사> 책의 <오늘의 묵상>을 쓴 사람은,

입타의 서원을 혼인 서약이나 수도 서원과 같은 서원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혼인성사의 서약이나 신품성사의 서약이나 수도 서원은 모두

자기 목숨을 걸고 하는 서약입니다. 그래서 취소할 수 없는 서약입니다.

결코 입타의 서원과 같지 않습니다.

교회의 기관지에서 이런 잘못된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