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8월 25일 연중 제21주간 화요일(성 루토비코, 성 요셉데 갈라산즈 사제)

dariaofs 2015. 8. 25. 06:03

성 루도비코 9세 왕

성 루도비쿠스(Ludovicus, 또는 루도비코)는 프랑스 왕 루이 8세와 카스티야(Castilla)의 블랑쉬(Blanche)의 아들로 프와시(Poissy)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1226년 그의 부친이 서거했을 때 그의 나이는 12세에 불과 했으므로 어머니가 섭정의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아들의 왕권을 노리는 샹파뉴(Champagne)의 티보를 비롯하여 야심 많은 귀족들과 대항했고, 어떤 때에는 전쟁도 불사하였다.

그는 1234년 5월에 프로방스의 공작 레이먼드의 딸인 마르가리타(Margarita)와 결혼하여 열 명의 자녀를 두었다. 같은 해에 그는 대권을 물려받고 통치자가 되었고, 모친 블랑쉬는 고문관으로 아들을 도왔다. 그는 1242-1243년의 남 프랑스의 반란을 진압했고, 또 잉글랜드(England)의 헨리 3세를 테임브르그에서 격퇴하였으며, 포와투를 손에 넣는 등 국가의 권력을 점점 확대하였다.

 

1248년 그는 십자군을 지휘하여 출정하였으나 1249년에 다미에타에서 포로가 되어 사라센인들의 손에서 곤욕을 치렀다. 그 후 그는 석방되어 성지로 가서 1254년까지 머물다가 모친의 사망 통보를 받고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는 플랑드르(Flandre)와의 평화를 이룩했고 리모주(Limoges), 카오르(Cahors) 등 수많은 지역을 평정하였다.

루도비쿠스는 천성적으로 신심이 깊었고, 또 실제로 이상적인 수도자를 꿈꾸었다. 이 때문에 그는 정의를 펴고 그리스도교적 사랑으로 나라를 다스렸으며, 왕으로부터 농부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권리를 옹호하여 성왕으로 불리었다.

 

동시에 그는 예리하고 힘찬 군주였으며, 동시에 평화를 사랑하는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불경한 태도나 말을 한 사실이 없다. 그의 맏아들에게 했던 유언에서도 그는 자신의 신앙을 그대로 설명하고 지키도록 부탁할 정도였다. 1270년 그는 재차 십자군을 일으켰다가 8주일 후에 이질에 걸려 운명하였다.

성인은 한마디로 가장 이상적인 중세의 그리스도인 왕이었다. 그의 치하에서 프랑스는 최대의 번영을 누렸다. 그의 신심은 자신이 작은 형제회 3회원이 됨으로써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는 작은 형제회 3회의 남자 수호성인이다.

 

그는 1297년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Bonifatius V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임종시에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주님, 저는 이제 당신의 집에 들어가렵니다.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서 예배하리이다. 당신의 이름에 영광을 드리나이다.” 그리고 오후 3시경에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하며 숨을 거두었다. 그의 유해는 생드니(Saint-Denis) 수도원 성당에 안장되었다.

 

 

 

성 요셉 데 가라산즈 사제

아버지 페드로(Don Pedro Calasanza)와 어머니 마리아(Maria Gastonea)의 막내아들인 성 요셉(Josephus)은 에스파냐 아라곤(Aragun)의 페트랄타 데 라 살(Petralta de la Sal) 근처의 칼라산사(Calasanza) 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에스타디야(Estadilla)에서 문법과 수사학을 공부하였으며, 레리다(Lerida) 대학에서 철학과 법학을 공부하여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1571-1577년). 그리고 발렌시아(Valencia) 대학과 알칼라 데 에나레스(Alcala de Henares)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그런데 이 기간 중에 어머니와 형이 사망하자, 아버지는 요셉이 돌아와 결혼하여 가문을 이어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요셉은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물리치고 1583년 12월 17일 우르겔(Urgell)의 주교인 우고 암브로시우스(Hugo Ambrosius)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성 요셉은 알바라신 교구에서 활동하였다.

 

교구장 주교는 성 요셉을 자신의 고문 신학자이자 주교대리로 임명하여 피레네 산맥의 외딴 지역들에 대한 성직자들의 개혁과 신앙 재건을 위하여 파견되었다. 요셉은 모든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1592년 로마(Roma)로 가서 콜론나(Colonna) 추기경을 만났는데, 그 추기경 역시 성 요셉을 자신의 고문 신학자 겸 조카의 스승으로 삼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는 로마에서 교육과 자선 활동을 위한 공동체 설립을 시도하게 되었다. 그는 로마에서 일반 국민들의 무지와 윤리적 타락, 특히 부모가 죽은 뒤 버림받은 고아들을 보살피고 교육하는 일이 급선무임을 깨닫고 티베르 강을 끼고 있는 빈민가에서 유럽 최초의 무료 공립학교를 개설하였다.

 

그는 1597년에 두 사제의 도움으로 이 학교를 연 다음 ‘그리스도교 교리 형제회’의 책임자가 되었다. 마침내 1617년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는 성 요셉이 설립한 학교를 공식 수도회로 승인해 주었고, 많은 이들의 지원과 협력으로 이와 유사한 많은 학교들이 설립되어 학생수가 천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1621년 11월 18일에 그의 공동체는 교황청으로부터 정식 인준을 받은 수도회가 되었으며, 성 요셉은 이 수도회의 종신 총장이 되었다.

초창기의 사제들은 주로 초등학교에서 가르쳤다. 성 요셉은 초급과 중급 학교의 체계화에 기여하였다. 그는 교과과정을 면밀히 구성하였고 어린이들이 선(善)을 사랑하도록 교육 원칙을 세웠다. “어린이들이 처음부터 신앙과 문학 교육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삶이 행복함을 알게 된다.”고 그는 기록하였다. 이들 학교는 에스파냐, 보헤미아(Bohemia), 폴란드, 이탈리아 등 수많은 나라에 세워졌다.

 

그러나 설립자의 만년은 야심을 가진 후계자들의 심각한 분쟁으로 점철되었다. 그는 또 다른 욥처럼 용기를 발휘하였지만 그의 수도회에 대한 신뢰는 그가 죽은 후에야 되살아났다. 그는 로마에서 1648년 8월 25일에 운명하였고, 1748년 8월 7일 시복되었으며 1767년 7월 16일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교황 비오 12세(Pius XII)는 그를 ‘모든 그리스도교 학교의 천상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강론   :    마태오 23..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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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오늘 주님께서는 위선자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불행선언을 하시는데

우리는 이 불행선언이 이들에 대한 저주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못되어 먹고, 못된 짓이나 하는 자들이니

이런 자들은 불행해지라고 주님께서 저주하셨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런데 이것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못된 나의 생각이지

주님께서는 그런 분이 아니시고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는 가끔 저 자신에게 깜짝 놀라곤 하는데

여러분도 이 얘기 들으면 깜작 놀라실 것입니다.

 

어떤 때 운전하고 갈 때 이런 경우가 많지요.

제가 서행을 하는 편이고 신호가 바뀌어도 천천히 출발하는 편인데

그럴라 치면 뒤에서 경적을 크게 울려 제가 깜짝 놀랄 경우

저런 나쁜 놈은 타이어에 펑크나 나라는 저주가 속에서 튀어나옵니다.

 

10초도 안지나 그러면 안 되지 하고 저를 나무라지만

그런 저주가 제게 있는 것만은 분명하고 그런 저주가 제게 있기에

주님의 불행선언도 저주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불행해지라고 저주하시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지금 불행하다고 선언하시며

불행한 줄을 빨리 깨닫고 고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음 말씀을 보면 주님의 그런 바람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이 불행하다는 것을 알라는 것이 불행선언의 뜻이니

이들처럼 되지 않으려면 우리도 자신이 불행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불행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로 십일조 내는 것은 중시하면서

더 중요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는 경시하는 것입니다.

이 불행은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이 뒤바뀜의 불행이요,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를 중요시하지 않음의 불행인 것이지요.

 

가치가 전도된 사람은 정말 불행합니다.

근자에 큰 기업을 가진 사람들의 불행을 우리는 봤습니다.

형제간에 사랑 없이 경영권 다툼을 하는 것도 불행인데

부모와 자식 간에 그러하니 이 얼마나 불행이고 꼴불견입니까?

 

그런데 이것은 세속에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부가 되어서 교회 운영 때문에 교무금이나 봉헌금에만 신경 쓰며

사회정의와 자비실천에 대해선 무관심하다면 이 또한 가치전도이고

신자들도 교무금과 봉헌금을 잘 내는 것으로 신자생활 잘한다 생각하고

성당 밖에서는 세속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불의를 저지르고

이웃이나 직원들에게 무자비하다면 이 또한 가치전도입니다.

 

둘째로 겉은 깨끗한데 속이 더러운 불행에 대해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겉은 깨끗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속이 더러운데 겉이 깨끗하니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불행한데도 자신이 불행한 줄 모르고 행복하다고 착각하는 것으로

속은 골병이 들었는데 화려한 겉치장으로 불행을 숨기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 대신 탐욕으로 속이 가득 찬 것이 진정 불행이고,

그것이 불행인 줄을 모르는 것은 참으로 더 큰 불행입니다.

탐욕은 먹어도, 먹어도 헛헛한 사람처럼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가득 차기 전까지는 욕심이 한없이 채우려고 하겠지만

그것이 불행인 줄을 아는 것,

이것이 주님께서 바라시는 회개의 첫걸음임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