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 (마태 23,1-12)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8월 22일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 교만, 허영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마태 23,1-12).
우리는 이 말씀을 오늘 우리를 꾸짖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시는 주님이시고,
성경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 23,3)."
이 말씀에는 "그들이(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인정할 수 없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이미 알고 있거나,
자기가 듣는 말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식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말과 행실이 다른 사람이 전하는 '말씀'과
그 사람의 '행실'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복음적이지 않은 행실을 비판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말씀'과 '행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 경우에 말과 행실이 다른 사람이 전하는 복음을 듣게 되면
그 사람의 행실을 보고 그렇게 사는 것이 복음적인 생활인 줄 알 것이고,
그 행실을 따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말과 행실이 다른 사람은,
'위선'이라는 죄에다가 다른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는 죄까지 짓는 셈이 됩니다.
여기서 '행실'이라는 말을 '삶'으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1)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을 하려면,
자기 자신부터 믿음을 '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고난과 시련을 겪어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유지해야 합니다.
항상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께 의지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서 바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만일에 믿음을 '삶'으로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믿으라는 말을 한다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원래 그런 것인 줄로 오해할 것입니다.
실천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야고 2,17).
죽은 믿음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없는 믿음입니다.
2)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말하려면, 자기 자신부터 희망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가지라는 말을 못하지만,
하더라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믿음'과 '희망'은 하나입니다.
3) 사랑 없이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8)."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실상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인데,
그게 말로만 해서 될 일은 아닙니다.
요한 1서 저자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일치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1요한 4,20)."
여기서 '형제'는 '모든 사람'입니다.
4) '겸손'도 역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삶으로) 실천해야 하는 일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겸손'에 대해서,
또 '겸손'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말할 수는 있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말'보다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삶'을 먼저 볼 것입니다.
겸손하지 않은 사람이 겸손에 대해서 말한다면,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비웃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싶어 하는 자들의
명예욕과 교만과 허영을 꾸짖으시면서,
스스로 자신을 높이면 낮아질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 23,11-12)."
5) 가난하게 살고 있지 않은 성직자들이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주제로 강론을 할 때,
그 성직자의 삶이 가난하지 않다는 것을 청중이 잘 알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혹시,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루카복음보다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마태오복음을
더 선호하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는 안 가난해도 마음만 가난하면 된다고 우기는 것은 아닐까?)
이 모든 일들을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바로잡는 것이 '회개'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자기 자신의 신앙생활부터 먼저 반성해야 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종교와 신앙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하느님에게서 멀어져만 가고,
그래서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걱정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가장 걱정스러운 일은 '교회의 세속화'입니다.
세속화된 신앙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을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을 선포하려면, 신앙인들이 먼저 복음화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말하려면,
말하는 쪽에서 먼저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살고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려면,
인도하는 쪽에서 먼저 '생명 속에서' 살고 있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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