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획 특 집

[북·중 접경 지역을 가다] <상> 두만강 그 슬픈 이름… 연길·방천

dariaofs 2015. 8. 30. 07:30

분단의 아픔 고스란히 담긴 1200㎞ 대장정에 올라



▲ 망해각 위에 올라온 탐방단 일원이 러시아와 중국, 북한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뒤쪽으로 보이는 지역 중 왼쪽이 러시아, 오른쪽이 북한이다. 김유리 기자


▲ 두만강에서 압록강까지 북ㆍ중 접경 지역 탐방에 나선 이들이 16일 인천공항에서 출국을 앞두고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유리 기자


광복절 다음 날인 16일. 한국에서 출발한 45명의 일행이 중국 땅을 밟았다. 사제와 수녀, 의사와 교수, 은행원부터 북한전문가까지 직업도, 종교도 다양한 이들이 모인 이유는 한 가지.

 

 광복과 분단 70주년을 맞은 올해 북ㆍ중 접경 지역을 탐방하면서 북한을 제대로 알고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서다.

북ㆍ중 접경지역 탐방단은 16일부터 21일까지 중국 연길에서 대련까지 1200㎞의 여정을 함께했다. 분단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역사의 현장에서, 광활한 중국 땅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북한을 보고, 느끼며, 남북이 하나 될 날을 그렸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정세덕 신부)가 주최하고 우리은행이 후원한 5박 6일간의 평화 대장정 취재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1) 두만강, 그 슬픈 이름 - 연길과 방천

(2) 북한의 민낯을 보다 - 회령과 혜산, 그리고 백두산

(3) 끊어진 다리 위에서 평화를 외치다 - 단동 압록강 단교

“니~하오!”

16일 오후. 중국 연길 공항에 도착해 입국 심사를 하는 직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중국에 왔으니 간단한 인사 정도는 중국어로 하자’고 다짐했던 것도 잠시. 공항을 나서자마자 입이 떡 벌어졌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온통 한글이었기 때문이다. 도로명이나 옥외간판, 공항 이름까지 한글이 먼저 쓰여있고 그다음 한자가 병기되는 식이었다.

탐방단이 북ㆍ중 접경지역 출발지로 선택한 연길은 정확히 말하면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다.

 

 56개 소수민족이 사는 중국은 소수민족이 각자의 언어와 문화를 유지하면서 살 수 있도록 그 민족의 언어를 먼저 사용하는 소수민족 우대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연길 땅에 온통 한글이 쓰여 있는 것도 연길의 인구 중 60% 이상이 조선족이기 때문이다.

현지 가이드인 조선족 최림호(39)씨는 “조선족 대부분은 일제강점기 때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에서 독립운동을 하거나 간도 지역으로 강제로 이주당했던 세대와 그 후손들”이라며 우리 민족의 굴곡진 역사를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한민족의 정체성을 간직한 이들이 바로 ‘조선족’이라고 했다.

연길에서 버스로 2시간을 달려 훈춘에 들어섰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만나는 지역인 훈춘에서도 세 나라가 접하는 꼭짓점이 있는 방천은 눈앞에 보이는 곳 중 왼쪽은 러시아, 발을 디디고 있는 곳은 중국, 오른쪽은 북한 땅인 신기한 곳이었다. 중국이 북한과 러시아 사이를 파고든 지역이라 중국 본토에서 삐죽 나와 있는 모습이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한눈에

일행이 도착한 곳은 방천의 망해각. ‘바다를 바라보는 누각’이라는 뜻의 망해각은 북ㆍ중ㆍ러 삼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중국의 관광명소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외국인이 들어올 수 없는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중국 정부가 나서서 관광 산업을 활성화하고 있다.

“와아~ 저기가 정말 북한인가요? 그 옆이 러시아고요?” 망해각 꼭대기에 오르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북한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이 처음이라는 김성훈(32)씨는 “한민족인 북한을 정작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이 남의 나라라는 게 안타깝다”며 북한 땅에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눈앞에 보이는 두만강이 흘러 흘러 동해로 빠져나간다니 처음 와 보는 곳이지만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탐방을 함께한 평화나눔연구소 윤여상 박사는 “방천의 땅값이 무서울 만큼 치솟고 있는데, 방천 땅값보다 더 빨리 오르는 게 망해각 입장료”라며 “북한을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한국인들이 많아 중국에서도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분단의 현실이 주변국에는 좋은 돈벌이가 된다니…. 망해각을 뒤로한 채 떠나는 발걸음이 씁쓸했다.

가슴 먹먹해지는 이름, 두만강

방천을 떠나 다시 연길로 돌아오는 길. 이차선 도로 왼쪽으로 두만강이 흘렀다. 폭이 100m도 안 돼 보이는 두만강으로는 가끔 시체가 떠내려간다고 한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오려다 북한군의 총을 맞은 북한 주민들이다. 한 형제인 우리는 비행기에 버스를 타고 이곳까지 여행을 오는데,

 

북한 사람들은 강 하나를 건너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니. ‘눈물 젖은 두만강’을 듣고 자란 세대도 아닌데 ‘두만강’이라는 세 글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강 건너 북한 땅에 사람 그림자라도 있을까 차창에 얼굴을 바짝 붙여보았지만, 철책선 너머로는 군데군데 북한군 초소만 있을 뿐이었다.

북ㆍ중 접경지역 탐방단의 첫째 날 여정은 연변대학 국제무역학과 임금숙 교수의 세미나로 마무리됐다. 임 교수는 북한의 경제 상황을 4가지 키워드로 요약했다. 식량난, 에너지난, 원자재난, 외화난이다.

 

그는 “북한에서 시장이 활성화되고 예전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나아졌다고 하지만, 1980년대 이후로 북한 사회가 고장 난 시계처럼 멈춰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식량과 에너지, 원자재, 외화가 모두 부족한 북한은 스스로 경제난을 극복하고 성장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족으로서 남북통일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던 임 교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남한에서 통일에 대한 열망이 줄어드는 게 안타깝다”며 “남북이 경제교류를 활발히 하면서 서서히 서로 간의 장벽을 허물어야 통일로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천공항을 떠나 연길, 훈춘, 그리고 다시 연길로 돌아온 하루 동안의 긴 여정. 숙소 바깥으로 보이는 연길의 화려한 야경을 보며 두만강변을 떠올렸다.

 

식량난과 에너지난으로 밤에도 불 켜진 집이 없다는 북한과 연길의 모습이 무척 대조적이었다.

잠들기 전 북한을 위해 짧은 기도를 바쳤다. ‘주님, 그곳에도 사람이 삽니다. 남이 아닌 우리의 형제들입니다. 고통 속에 살고 있는 형제들을 우리가 외면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김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