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6,3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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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 a blind person guide a blind person?

♣ ‘먼저’ 나부터 살피는 영성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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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일치하는 길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몇 십 년 수도생활을 하고 성경공부나 기도를 하여 영적으로 진보했다고 해도 자만심과 세속의 것으로 향하는 눈길,
악으로 기우는 육의 정신으로 말미암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지금 여기서 있는 그대로의 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어디서부터 영적 성장의 길을 시작해야 할까?
여기서 위선자들은 율법의 세세한 규정은 강조하면서도 그 근본정신을 소홀히 한 바리사이들이다.
자신에게는 눈이 먼 채 다른 이들의 율법 준수 여부에 촉각이 곤두서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에 대한 성찰이나 영혼의 정화 없이 다른 이들에게 ‘사랑도 혼도 없는 율법 준수’를 강요했다.
그들이 안식일법을 근거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처신을 문제 삼고 도발을 이어가 끝내는 그분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은 ‘먼저’ 자신의 영혼을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영혼이 맑으면 하느님을 일상 안에서 뵈올 수 있고, 만나는 이웃도 사랑스럽고 좋게 보일 것이다.
영안(靈眼)이 열리면 만사를 하느님의 눈으로 보게 되고, 따뜻하고 관대한 눈길로 다른 이들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6,39) 자신부터 성찰하고 다스려야 한다는 말씀이다.
육의 정신을 품은 채 남을 가르치거나 남의 행동을 고치려 하고, 정의롭게 살지 않고 마음의 평화가 없으면서 평화를 부르짖고 있지 않은지 ‘먼저’ 자신을 살필 일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6,42) 영적 성숙을 위한 출발점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6,40)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스승이신 예수님을 넘어설 생각을 하지 말고 그분의 말씀과 행적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라는 말씀대로 예수님을 본받아 그분이 걸어가셨던 십자가의 길, 사랑의 길을 기쁘게 걸어가야겠다.
그리하여 내가 ‘먼저’ 또 다른 복음이 되고 성체가 되어 걸어갈 때 모든 존재와의 만남이 성사가 되고 복음 선포가 되며 사랑의 향기가 될 것이다.
밖에서 문제를 찾고, 남의 탓을 하고, 늘 자신은 제외한 채 살아온 발걸음을 멈추도록 하자!
지금이 바로 멈추어 주님께로, 주님께로부터 멀어져 있는 자신에게로 시선을 집중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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