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 콜로새 1.24-2.3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골로새 인들에게 보낸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과 깊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람이 있었다는데
정말 모자란 부분이 있다는 뜻일까요?
제게는 이 말씀이 진짜 모자람이 있었다기보다
사랑의 속성 때문에 계속 모자란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런데 사랑의 속성 때문에 계속 모자란다?
이 말이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제가 얘기하는 그 뜻은 이런 것입니다.
참 사랑은 줘도, 줘도 모자란다고 느끼는 법이지요.
받는 사람이 너무 욕심이 많아 모자란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주는 사람의 사랑이 너무 크고 넘쳐서 줘도 더 계속 주고 싶고,
더 주고프기에 지금까지 준 사랑으로는 모자란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 있고
그를 위해서 온갖 애를 다 썼는데도 어려움이 계속되면
비록 내가 나의 전부를 그 사랑을 위해 바쳤어도
지금까지 겪은 고난으로는 모자란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래서 계속 고난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실 나는 너를 위해 할 만큼 다 했다고 생각하는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해야 할 사랑의 양을 정해놓고 그것을 계산하면서 한다면
그 사랑은 사랑일지라도 작은 사랑, 옹졸한 사랑이겠지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더 보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와 바오로 사도의 일체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참 사랑이기에
우리 인간을 위해 당신 자신을 다 바치셨어도
우리 인간의 계속되는 고통에 계속 고난을 당하셔야 하는데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겪어야 할 이 고난이 자신의 것이고
자신이 지금 겪는 고난이 그리스도의 고난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얘기하는 바로 그 <고통의 성사화>입니다.
우리가 성사를 잘 살지 못할 때에는 고통 따로, 주님 따로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사를 잘못 살면 우리의 고통 안에 주님이 안 계셨는데
성사를 살기 시작한 사람은 뭣을 해도 그러하지만
특히 고통을 당할 때에 자신의 고통을 주님의 고통과 일치시킴으로서
자신의 고난이 사랑의 성사가 되게 합니다.
오늘 나는 나의 고통으로 주님의 사랑에 참여하고 있습니까?
나의 고통 안에 주님이 함께 계십니까?
이것을 돌아보는 오늘입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