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10월 9일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성 디오니시오 주교와 동료 순교자들 또는 성 요한 레오나르디 사제

dariaofs 2015. 10. 9. 05:41

 

성 디오니시오 주교와 순교자들

원래 성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는 이탈리아 태생 주교였으나 250년에 선교사로서 프랑스 지방으로 파견되었다. 이때 6명의 주교들이 프랑스로 갔다고 한다. 그는 파리의 초대주교로서 활약하였다. 그는 불과 몇 년을 선교하다가 자신의 사제인 성 루스티쿠스(Rusticus)와 부제 성 엘레우테리우스(Eleutherius)와 함께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이 세 성인은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파리 근교에서 참수되었는데, 참수된 곳을 사람들이 몽마르트르 곧 '순교자의 언덕'으로 불렀다. 이곳이 오늘날의 몽마르트르 거리이다.

 

그들의 유해는 센(Seine) 강에 던져졌으나 곧 찾아냈으며, 그들의 무덤 위에 성당을 지었는데 이곳이 그 유명한 생 드니의 베네딕토 수도원이 되었다. 성 디오니시우스는 데니스(Denis) 또는 드니로도 불린다.

 

 

 

성 요한 레오나르디 사제

이탈리아의 루카(Lucca) 지방의 디에치모(Diecimo)에서 일곱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성 요한 레오나르디(Joannes Leonardi)는 약학을 공부하여 약사로 여러 해 동안 일했다. 그 후 콜룸바누스회에 입회했으며, 고해사제이던 도미니코회 파올리노 베르나르디노(Paolino Bernardino)의 지도를 받아 인문학과 철학, 신학을 공부하여 1572년 12월 22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사제가 된 그는 성당에 부임하여 어린이와 성인의 교리교육을 위한 활동을 하였다. 또한 그는 병원과 감옥의 사목활동에 정열을 쏟아서 수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자 후원자들과 협력자들이 쇄도하였다.

그때 마침 트렌토(Trento) 공의회가 열리고, 프로테스탄트가 기세당당하게 활동하므로 요한과 그의 후원자들은 새로운 교구 사제회의 구성을 계획하여 프로테스탄트와 대항하려 하였다. 그래서 그는 1574년 9월 1일 ‘복되신 동정녀의 개혁 사제회’를 결성했다.

 

이 사제회는 1619년 8월 14일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천주의 모친 성직 수도회’라 개칭되어 승인받았다. 이들은 초기에 루카 지방에서 활동하던 도미니코 회원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루카 지방에서 발생한 프로테스탄트 운동에 강력한 반격을 가한 요한의 사도적 열정과 개혁은 교황의 도움으로 구체적으로 전개되었다.

1584년 그는 로마(Roma)에 있는 친구 성 필리푸스 네리우스(Philippus Nerius, 5월 26일)를 방문하여 그의 소개로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Gregorius XIII)를 알현하였다. 그와 동료 사제들은 이탈리아에서 프로테스탄트가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609년 로마(Rome)에 독감이 퍼지자 요한은 독감에 걸린 14명의 동료 수도자들을 간호하던 중에 감염되어 그 해 10월 9일에 사망하였다. 그는 1861년에 시복되었고, 1938년 4월 17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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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복음의 끝에 선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면

가장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실 거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악한 아비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아는데

하느님께서는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적대자들은 주님을

성령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악령의 하수인쯤으로 깎아내립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악령의 하수인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제 생각에 이들은 합리적인 의심자들일 수도 있지만

자기들이 옳고 선하다고 생각하는데 주님께서 자기들을 반대하시니

오히려 그런 주님을 악의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것일 수도 있지요.

 

사실 국제정치나 인간관계에서 적대적인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특히 힘 있는 쪽에서 자기편에 서지 않는 상대를 왕왕 악으로 규정하지요.

부시가 미국 대통령일 때 북한과 이란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하는 것을 보고

저는 소가 보고서 웃을 노릇이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미국이 세계경찰 노릇을 하고 있는데

자기편에 서지 않고 맞서는 독재국가는 악이라고 규정하고

자기편에 서는 독재국가는 아무 소리 하지 않거나 오히려 지원하며,

이스라엘의 핵 개발과 소유는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이란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만 시비를 걸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힘 있는 사람들은 세계나 국가 체제를 자기중심으로 만들어놓고

자기편에 서면 선이고 반대편에 서면 악으로 규정하고는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나 개인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라고 하시는

오늘 주님의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하신 말씀일까요?

예수님도 편 가르기를 하시면서

자기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적대시하시는 것인가요?

 

결코 그렇지 않지요. 주님은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당신을 반대하는 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당신의 성령을 반대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하시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을 받으셨고

특히 루카복음의 시작에 고향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읽으실 때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님의 영이 나에게 내리셨다.”

부분을 읽으심으로써 당신이 성령을 받으셨음을 천명하신 바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광야로 나가 악령과 대적하고

성령으로 그 악령을 물리치셨으며 이후 공생활 내내 그러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처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기도의 응답으로 성령을 받은 우리라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합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자기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포용함으로써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고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이룹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는 힘, 곧 포용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악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고 파괴적입니다.

포용력이 없기에 자기와 다르거나 자기편에 서지 않으면

배척하거나 억압함으로써 개인과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주님은 길 잃고 흩어진 양떼를 모으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란 하느님 백성의 모임이고, 우리 공동체도 그러하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이 주신 주님의 성령을 모신 자라면

우리도 주님과 함께 흩어진 영혼들을 하느님 중심으로 모아들일 것이고,

악령의 인도를 받는다면 나와 다른 것은 모두 단죄하고 배척함으로

공동체를 흩어버리고 파괴할 것입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