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12월 3일 대림 제1주간 목요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선교의 수호자) 대축일

dariaofs 2015. 12. 3. 05:30

 

 

에스파냐 북부 바스크 지방(Basque Provinces)의 팜플로나(Pamplona) 교외에 있는 하비에르 가족 성(城)에서 태어난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우스(Frianciscus Xaverius, 또는 프란체스코)는 파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1528년에 학위를 받았으며, 그곳에서 예수회의 설립자인 로욜라(Loyola)의 성 이냐시오(Ignatius, 7월 31일)를 만났다.

 

처음에는 이냐시오의 생각에 반대했던 그는 생각을 바꾸어 예수회의 설립회원 7명 가운데 한 명이 되었다. 그들은 1534년에 파리(Paris) 북부 몽마르트르(Montmartre)에서 첫서원을 발하였다.

그는 이냐시오와 다른 4명의 회원들과 함께 1537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Venezia)에서 서품을 받고, 그 다음해에 로마(Roma)로 파견되었으며, 예수회가 성좌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은 1540년에는 시몬 로드리게스(Simon Rodriguez) 신부와 함께 예수회원으로서는 첫 번째 선교사로 임명되어 동인도로 파견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포르투갈의 리스본(Lisbon)에서 발이 묶였다. 왜냐하면 국왕 후안 3세(Juan III)가 로드리게스 신부는 남으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해 프란치스코는 8개월을 하릴없이 지내다가 1541년 4월 7일에야 떠날 수 있었는데, 이때는 교황으로부터 인도의 교황대사 자격을 부여받은 뒤였다.

그는 13개월 후에 인도 중서부 고아(Goa)에 도착하였고, 5개월 동안은 병자와 죄수들을 찾아보는 일과 어린이의 신앙교육 및 그곳의 포르투갈 사람들의 비도덕성을 바로잡는 일에 착수하였다. 그 후 그는 인도의 남단 타밀나두(Tamil Nadu)에 있는 코모린 곶(Cape Comorin)에서 3년을 지내면서 파라바족(Paravas)을 사목하여 수천 명의 개종자를 얻었다.

 

1545년에 그는 말레이시아의 말라카(Malacca)를 찾아갔고, 1546년부터 1547년까지는 뉴기니(New Guinea)와 인접한 몰루카(Molucca) 제도와 필리핀과 가까운 모로타이(Morotai) 섬을, 1549년부터 1551년에는 일본까지 왕래하였다. 그는 인도의 첫 번째 예수회 관구장이 되었다.

그 후 그는 중국에 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안토니우스(Antonius)라는 중국인 청년과 복음을 전하려고 출발하였으나 광둥항(廣東港)이 바라보이는 상치안(Sancian) 섬에서 운명하고 말았다. 결국 그는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도 대륙으로 들어가지 못하였다.

흔히 그는 사도 바오로(Paulus)에 버금가는 위대한 선교사로 불린다. 그는 수많은 위험과 역경을 딛고 상상할 수 없는 거리와 지역을 여행하였고, 그 자신이 개종시킨 교우 수만 하더라도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그래서 그는 ‘인도의 사도’, ‘일본의 사도’라고 불리며, 1619년 시복되고 바로 이어서 162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해 자신의 사부이자 동료인 예수회의 창설자 로욜라(Loyola)의 성 이냐시오(Ignatius, 7월 31일)와 함께 시성되었다.

 

그리고 1927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그를 리지외(Lisieux)의 성녀 테레사(Teresia, 10월 1일)와 함께 '가톨릭 선교활동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강론   :   (마르 16,15-20)

 

<복음 선포, 선교>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내리신 마지막 명령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는 신앙인이라면,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충실하게 실행해야 합니다.

 

1) 이 말씀에서 '너희'는 '모든 신앙인'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모든 신앙인의 사명입니다.
사도들과 성직자들과 선교사들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안 해도 누군가가 하겠지." 라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복음 선포는 '교회의 일'이면서 동시에 '내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스테파노 순교 후에 각지로 흩어진 신자들은 숨어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능동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사도 8,1-4)."

 

2) 복음 선포는 '항상, 지금' 해야 하는 일입니다.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2티모 4,2)."
복음을 선포하지 않아도 되는 때란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꾸준히 해야 하고, '지금' 해야 합니다.

 

3) 복음은 '온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전해 주어야 합니다.
"누구에게는 복음을 전해 주고, 누구에게는 전해 주지 않고"를
마음대로 미리 정할 수는 없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거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부해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거부한 사람의 책임인데,
처음부터 그것을 예상하고 아예 전해 주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잘못입니다.

 

4) 복음은 우리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 같은 말은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속의 부귀영화와 성공과 출세를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처음에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은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르 1,15)."였고,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라는 소식이었습니다(사도 2,14-36).


이 두 가지 복음을 하나로 합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가 됩니다.


여기서 '믿으면'이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면"입니다.

 

5) 복음은 구원의 기쁜 소식이기 때문에 '믿음과 기쁨으로' 전해야 합니다.
자기의 '믿음'과 '기쁨'을 이웃과 나누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을 '말'로 고백하는 일과 '삶'으로 증언하는 일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삶'이 그렇지 않다면, 믿는다는 말은 거짓말이 됩니다.


또 '기쁨'을 말로 표현하는 일과 '삶'으로 기쁨을 드러내는 일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실제로, 진심으로, 기쁨 가득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6)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예수님의 명령이지만,
명령이라서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은 아닙니다.


복음 선포는 내가 기뻐서 하는 일입니다.
너무 기뻐서, 그래서 그 기쁨을 나누고 싶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고, 내가 원해서 하는 일입니다.

 

안드레아 사도가 한 일이 좋은 예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묵은 다음에 안드레아는 베드로에게 가서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라고 말합니다(요한 1,41).
그리고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리고 갑니다(요한 1,42).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시키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분명히 안드레아 자신이 너무 기뻐서 형에게 가서 '자랑'을 한 것이고,
'기쁨'을 나누려고 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도 좋은 예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많은 대화를 나눈 그 여인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요한 4,25-26).


아마도 그 여인은 몹시 기뻤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마을로 가서 사람들에게 자기의 믿음을 전합니다(요한 4,28).

 

7)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마태 18,14).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모든 사람은 가족이고 '한 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만 가족이고 '한 몸'인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한 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됩니다.
한 몸의 지체인 내가 다른 지체에게 복음을 전해 주는 일이니,
결국 내가 나에게 하는 일이고, 내가 나를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너'를 살리는 일은 곧 '나'를 살리는 일입니다.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이기 때문입니다.)

 

'한 몸'이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원래 복음을 전하는 일은 사실은 자기 자신의 구원을 위한 일이 됩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마태 10,32)."
복음을 전하는 일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안다고 증언하는 일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일은,
우리를 안다는(우리가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는) 예수님의 증언을(보증을)
미리 확보해 놓는 일이 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