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구약성경은 70인역이었다.
희랍어로 쓰였기에 민중이 쉽게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유다인만 히브리어 성경을사용했다.
당시는 구약성경 목록이란 것이 없었다.
따라서 성경으로 인정받는문서도 논란에 휩싸이곤 했다.
모세오경(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은 확실한 성경이었다.
하지만 다른 성경은 지역마다 목록이 조금씩 달랐던 것이다.
당시 기독교는 유대교 한 분파로 여겨졌기에 성경에 대한 결정은 유대교 랍비들이 쥐고 있었다.
베드로는 로마 백부장 코르넬리우스를 입교시키고(사도 10장) 그들과 가까이 지냈다.
초대교회 주도권을 쥐고 있던 유다인들은 베드로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방인과 절친한 걸 못마땅하게 여긴 것이다.
베드로는 지지 기반이 약해 명목상 수좌로만 있었고
실제 교회를 이끌었던 분은 주님의 형제 야고보(갈라 1,19)였다.
그의 율법주의 태도는 바오로와 마찰을 겪기도 했지만 유다인은 좋게 봤다.
그래서 의로운 사람이란 칭호를 부여했던 것이다.
주님의 형제 야고보는 로마에 의해 제일 먼저 순교한다.
이후 예루살렘이 파괴되자 초대교회는 변화를 겪는다.
우선은 주도권이 이방인 교회로 옮겨간 것이었다.
바오로가 개척한 소아시아 교회와 로마교회였다.
자연스레 유대교 그늘에서도 벗어났다.
그러자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는 갈등관계로 돌아선다.
당시 히브리어는 죽은 글자였다.
랍비들이 권위를 누리는 전유물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유다인은 바빌론 유배 때 습득한 아람어를 사용했다.
팔레스티나로 돌아오지 않은 유다인은 희랍어를 사용했다.
이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희랍어로 번역한 성경이 70인 역이다.
마침내 유대교는 초대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회의를 연다.
기원후 90년 열린 얌니야 회의다. 랍비들은 유대교 경전을 본격적으로 정리했다.
모세오경을 중심으로 예언서와 그 밖의 경전을 정경으로 확정 짓는 작업이었다.
핵심기준은 해당 문서의 히브리어 원본의 존재 여부였다.
다시 말해 희랍어로 번역된70인 역에서 번역된 문서의 히브리어 원본이 있느냐 없느냐 이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70 인역엔 있고 히브리어 원본은 없는 6권의 성경을 위경으로 판단했다.
그리하여 타나크(TANAK)라 불리는 유대교 구약성경이 결정되었다.
이후 유대교는 70인 역을 부정했고
70인 역을 사용하는 초대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해 유대교에서 제거하였다.
신은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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