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를 공인한다.
이후 초대교회는 급성장한다. 덩달아 문제점도 나타났다.
지역 교회들이 로마로부터벗어나려는 움직임이었다.
교회를 앞세워 독립을 꾀하려는 민족주의도 등장했다.
보편교회를 하나로 묶는 일이 급선무가 되었다. 기준은 성경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경전에대한 정리 작업이 궤도에 오르게된다.
하지만 성경 목록을 작성하는 데 있어서 동서교회는 갈등을 겪는다.
로마중심의 서방교회는 70인역을 전부 성경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동방교회는 달랐다. 유대교 경전인 타나크와 일치하는목록만 인정했다.
동방교회 주장을 대표한 사람이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오였다.
그는 이 과정에서 처음으로 정경正經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정경은 희랍어 카논cannon의 번역이다. 원래는 갈대를 가리키는 단어였다.
고대 희랍에서는 갈대를자尺로 사용했기에 표준 또는 기준이란 의미로도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로마교회는 70인역 전통을 재확인한다.
이렇게 해서 교황 다마소 1세는 70인역 성경을 라틴어로 새롭게 번역했다.
예로니모가 완성한 불가타 성경이다.
구약은 유대교 히브리어 성경(타나크)에서 직접 번역했고 신약은 70인역을 자료로 삼았다.
이후 서방교회는 2차 카르타고 공의회(419)를 통해 70인역 전체를 정경으로 선언한다.
동방교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초대교회엔 주님을 직접 봤고 말씀을 들었던 이들이 많았다.
이들의 증언으로 교우가 된 이들도 많았다.
예수님에 대한 기록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사도들이 살아 있을땐 예수님께서 곧 재림하시는 줄 알았다.
어느 누구도 보존을목적으로 글 쓸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1세기가 지나고 사도 시대가 끝나자 숱한 이단의 책들이 등장했다.
저자도 알 수 없고 내용도 조잡한 책들이었다. 이렇게 해서 신약의 정경작업이 시작된다.
신약성경은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편지와 예언서로 나눌수 있다.
편지의 경우 교회나 개인에게 전달되었고 지역교회에서 읽혀졌다(골로 4,16).
그리고 일정 기간 후 사본들이 모여 책으로 묶였다.
많은 문서 가운데서 정경으로 선택된
첫째 이유는공적 예배장소에서 읽혔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었다.
신약 정경 27권의 목록 역시 알렉산드리아 주교였던 아타나시오가 처음으로 마련했다.
AD 367년 자신의 교구 여러 교회에 부활 서신을 보내면서
오늘의 신약성경 27권과 동일한 목록을 제시했다.
AD 397년에 열린 제3차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신약성경 정경을 확정했다.
신은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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