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5년 12월 23일 대림 제4주간 수요일(캥티의 성 요한 사제)

dariaofs 2015. 12. 23. 04:29

 

 

 

성 요한 칸티우스(Joannes Cantius, 또는 요한 칸시오)는 1390년 6월 23일 폴란드 슐레지엔(Schlesien) 지방의 켕티에서 경제적으로 비교적 넉넉한 형편인 아버지 스타니슬라우스(Stanislaus)와 어머니 안나(Anna) 사이에서 태어났다.

 

요한은 태어난 마을에서 초등 교육을 받았고 1413년 크라쿠프(Krakow) 대학에 입학하여 1417년에 문학 석사학위를 받고 곧바로 그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였다. 1439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모교에서 성서 강의를 맡았다.

 

1443년경에 그는 터키에서 순교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예루살렘을 순례했으며, 네 차례에 걸쳐 로마(Roma)를 걸어서 순례하였다.

그는 설교로 매우 유명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비해 명성이 너무 높아 그만큼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직책을 사임하고 올쿠스즈의 본당사제로 봉직하게 되었다.

 

영혼들을 돌보는 사명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그는 재차 크라쿠프 대학의 성서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운명할 때까지 평생 동안 대학에서 성서학을 가르치면서 16권의 방대한 강의록을 남겼다.

 

또한 그는 위대한 신앙인으로 처신하였다. 그는 자신의 학문과 교수 그리고 생활의 엄격성은 물론 가난한 이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증거하며 살았다.

켕티의 요한은 1690년 시복되었으며, 1737년에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에 의해 폴란드(Poland)와 리투아니아(Lithuania)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리고 1767년 교황 클레멘스 13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현재 그의 유해는 크라쿠프(Krakow)의 성 안나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강론   :   루카 1,57-66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루카 1,66)



                                                         The birth of John the baptist

                                   

                                           ♣ 사랑의 연대로 여는 새로운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빌론 유배 후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지어준 새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배를 주관하는 사제들과 레위인들의 부정이 심해 예배가 쇠퇴합니다.

말라키 예언자는 그들을 향해 하느님의 질책을 전하고, 마지막 날에 메시아가 오시면 성전과 사제들을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말라 3,3).

그러나 메시아에 앞서 주님의 길을 닦으며 사람들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3,1)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실 것입니다(4,23).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입니다(마태 11,14).

아이를 낳을 수 없었고 나이도 많은(루카 1,7) 엘리사벳이 아이를 낳자 모두 주님의 큰 자비에 기뻐합니다(1,58).

 

엘리사벳과 즈카르야는 할례식에서 전통과 다른 이들의 생각을 거슬러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짓습니다(1,60. 63).

‘요한’이라는 이름은 하느님의 자비, 하느님의 은총이란 뜻입니다.

 

가족의 전통과 당시 관습을 깨뜨린 그의 이름은 새로운 구원의 시대를 예고하며 주님의 사랑의 길이 열림을 말해줍니다. 어떻게 새로운 시대를 여는 영성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현대는 지식과 정보, 과학과 기술,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융복합화를 추구하며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영성생활에서 이런 융복합화는 '통합적 영성'으로 표현되는데 그것은 '사랑의 연대'를 통해 가능합니다.

 

그런데 '개별성'이란 이름으로 지나치게 개인을 강조함으로써 개인주의화하는 현상이 갈수록 두드러져가는 듯합니다.

개인의 인격도 중요하지만 개체로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며 사랑의 연대로 함께 행복한 길을 찾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러 오신 '임마누엘' 주님의 뜻입니다.

 

이 뜻에 충실하여 이웃에게 눈길을 돌리며 손을 내밀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따뜻한 사랑을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외면할 때 신자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연대하고 공생하며 인간이길 추구하는 영적 통합을 추구하는 시대, 그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새로운 구원의 시대입니다.

 

새 시대에 필요한 것은 요한과 같은 투철한 자기인식과 항구한 투신, 하느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가난한 마음,

 

하느님과의 거리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인정하는 겸손함, 어떤 경우에도 사랑으로 연대하는 것뿐입니다.

구유에 아기의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께서는 우리가 기존의 전통이나 관습,

 

이기적인 구조에 매이지 않고 당신 때문에 완전히 뒤바뀐 새로운 가치에 따라 서로를 살리며 기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이런 주님의 뜻을 헤아려 각자의 울타리를 허물고 뜨거운 사랑으로 연대하여 복음의 가치를 실현하는 성탄이 되길 희망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