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1-18)
<빛>
요한복음의 '머리글'(요한 1,1-18)은,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신앙고백이기도 하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또는 요한복음서의 내용을 요약한 글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복음서 저자의 신앙고백으로 시작해서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이라는
토마스 사도의 신앙고백으로 끝나는 책입니다.
(요한복음 21장은 '부록'과 같습니다.)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고,
그렇게 믿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요한 20,3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이 말은 "예수님은 하느님으로서 한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왜 '말씀'이라고 표현했는지는... 모릅니다.
학자들이 이것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있고, 논란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결론은 없습니다.)
성탄절은 '한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신 분이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그분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성탄절은 우리의 '참 생명'이 시작된 날입니다.
단순히 예수님의 탄생을 경축하는 날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새 생명, 참 생명을 얻게 된 날이고, 우리는 바로 그것을 경축해야 합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을 '빛'이라고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이 '빛'은 생명의 원천을 뜻하기도 하고,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등불을 뜻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빛'을 받아서 살고 있고,
또 이 '빛'의 인도를 받아서, 참 생명을 얻는 하느님 나라에 가게 됩니다.
'빛'의 반대는 '어둠'입니다.
'어둠'은 죄와 죽음을 뜻합니다.
(죄는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에 죄가 곧 죽음입니다.)
그 '어둠'에서 벗어나려면 '빛'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 세상을 보면,
'어둠'에서 벗어나려고 하기는커녕 그 속에서 살겠다고 고집 부리면서
'빛'을 거부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5)."
이 말은 '어둠'이 '어둠'이라는 것을 모르고,
'빛'이 '빛'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모른다는 말은, 사실은 거부한다는 뜻입니다.)
누가 보아도 잘못된 신념인데도
자기 혼자서만 올바른 신념이라고 고집을 부리는 정치인들, 종교인들, 언론인들...
혼자서만 그렇게 살다가 끝나면 그 혼자만의 문제로 끝나지만,
자기의 잘못된 신념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그래서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19-20)."
지금 어둠 속에 있다는 점도 문제이지만,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단순히 몰라서 어둠 속에 있는 것이라면 깨우쳐 주면 됩니다.
그러나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면...?
누가 어떻게 해 줄 수가 없습니다.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가 하는 일이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또는 자기의 삶이 죄 속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사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나중에 자기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신경 쓰지 않고
지금 부귀영화와 쾌락을 누리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들이
바로 그런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자들이 하느님의 심판대에 설 때에는
분명히 후회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들이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것 자체가
이미 심판을 받은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요한 3,19).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 사랑, 참 평화, 참 행복을 얻지 못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이미 심판을 받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성탄절은 어둠 속에 있는 인간들에게 참 빛이 비추어지기 시작한 날입니다.
(우리가 참 빛을 만난 날입니다.)
따라서 성탄절은 참으로 회개가 시작된 날이기도 합니다.
회개는 단순히 죄를 뉘우치는 일만 뜻하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 쪽을 향해서 '온 삶'을 바로잡는 일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방향을 바로잡는 기준이 되는 신호등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요한 1,12)."
여기서 '권한'이라는 말에는 '자유'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지 않을 권한'이기도 합니다.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은,
인간들이 각자 자유의지로 선택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각자 자신이 져야 합니다.
'멸망'은 자기 선택에 대해서 자기가 책임지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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