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9년에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는 성 베라르두스(Berardus, 또는 베라르도)를 비롯하여
그의 동료 성 오토(Otto), 성 베드로(Petrus), 성 아쿠르시우스(Accursius) 그리고 성 아주투스(Adjutus)를 서방 모슬렘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파견하였다. 그들은 세비야(Sevilla)의 무어인에게 선교하다가 투옥되었다가 석방되었다.
그 후 그들은 모로코의 마라케시(Marrakesh)로 가서 길거리에서 설교하였다. 아라비아말을 아는 사람은 성 베라르두스 혼자뿐이었다.
처음에 무어인들은 그들이 실성하였다고 판단하여 그냥 내버려 두었으나, 계속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마호메트의 교리를 포기하라고 공개적으로 설교하자, 그들을 사로잡아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이들이 작은 형제회의 첫 순교자들이다. 7년 후에는 성 다니엘(Daniel, 10월 10일)과 6명의 작은 형제회 수도자들이 모로코의 체우타(Ceuta)에서 순교하였다. 성 베라르두스와 동료 순교자들은 1481년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IV)에 의해 시성되었다.
강론 : 마르 2,13-17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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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인과 사회적 약자를 품는 사랑의 소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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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호숫가에서 군중들을 가르치신 뒤 세관원인 레위를 부르시어 제자로 삼으시고(2,14), 그의 집에서 당신을 따르던 많은 죄인과 세리들과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십니다(2,15).
그 밖의 다양한 이유로 죄를 지은 이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모두와 함께 음식을 먹고 친교를 나누십니다.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이 이의를 제기하자(2,16), 예수님께서는 의인이 아니라 영혼의 병을 앓고 있는 죄인을 구원하러 왔다(2,17)고 오신 목적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첫째는 첫 제자 공동체에 인간적인 나약함과 죄성(罪性)을 지닌 평범한 사람들을 받아들여 함께하셨던 예수님처럼, 죄인을 받아들여 함께함으로써 선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 또한 받아들여져야 하는 죄인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본당과 신심단체, 수도공동체에서도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형제자매를 판단하거나 은연중에 소외시키기도 합니다.
오히려 그런 이들을 사랑으로 너그럽게 대함으로써 그들이 영혼의 병을 회복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분은 소외되고 상처받고, 영혼의 어둠을 지닌 사람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의 사랑의 회복에 집중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할 삶의 방향이요 행동방식입니다.
그분은 죄인의 어둠에 빛을 비춰주시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주심으로써 하느님께 되돌아가게 해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사와 발걸음은 예수님처럼 의인이나 건강한 이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무런 결핍이나 어려움이 없는 이들이 아니라, '먼저' 죄인들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영혼의 병을 앓고 있다면 나를 어루만져주실 주님 앞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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