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2,1-11)
<카나의 혼인 잔치>
갈릴래아 카나의 어떤 집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과 성모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초대를 받았습니다(요한 2,1-2).
그런데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아신 성모님께서
예수님께 그 사실을 말합니다(요한 2,3).
당시에는 혼인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진다는 것은
신랑에게는 큰 수치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포도주가 없구나." 라는 성모님의 말씀은,
단순히 포도주가 떨어졌고, 그래서 신랑이 몹시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만 알려드린 것입니다.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예수님께 맡긴 것이고.
성모님과 그 잔치 주인이(신랑이) 친척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또 누군가가 성모님께 뭔가 부탁이나 하소연을 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어떻든 이 일은 성모님의 '자애심'을 나타냅니다.
(자녀의 딱한 사정을 먼저 알고 보살펴 주는 어머니의 사랑.)
아마도 그 상황은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곤란한 상황이었을 것이고,
잔치를 그냥 끝내야만 하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고 믿으셨고,
그래서 예수님께 그 상황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모님께서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모르고 계셨을까?
아니면, 알고 계시면서도 지켜보기만 하셨을까?
복음서의 내용만으로는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인간들의 사정에 무관심한 분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모님께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
이 말씀에서 '여인이시여' 라는 말은, 우리에게는 상당히 불경스럽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깊은 존경을 나타내는 높임말입니다.
(우리말을 기준으로 해서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라는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거절'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곧바로 기적을 행하셨기 때문에
이 말씀을 '거절'로 해석할 수는 없고,
좀 더 깊은 뜻이 들어 있는 말씀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여기서 '저의 때'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결정적으로 드러내시는 때"를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뒤에 아버지께 기도를 바치실 때,
'때' 라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
'카나의 혼인 잔치'는 예수님의 '때'가 아직 오지 않은 시점이고,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이 바로 그 '때'입니다.
그런데 뒤의 11절을 보면, 복음서 저자는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요한 2,11)."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직 당신의 때가 아닌 혼인 잔치에서 드러내신 '영광'과
당신의 때가 되어 드러내신, 즉 십자가 수난과 부활로 드러내신 '영광'은
같은가, 다른가?
같은 영광이지만, 혼인 잔치 때에는 제자들에게만 드러내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목격한 사람은
성모님과 제자들과 일꾼들입니다(요한 2,9).
그들은 모두 기적의 증인들인데,
복음서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말만 있고,
그 일꾼들이 믿게 되었다는 말은 없습니다.
제자들은 원래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들이고,
그 믿음 속에서 더욱 깊은 믿음을 갖게 되었는데,
예수님을 안 믿었던 일꾼들은 기적을 목격하고서도 믿음을 갖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시긴 했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온 세상 사람들에게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지는 않았다는 것.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보면,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라는 말씀은,
"아직은 제가 메시아라는 것을 드러낼 때가 아닙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부탁하시니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무엇을 할까요?"로 해석됩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이것은 어머니를 극진히 섬기는 아들의 모습입니다.
("무엇을 할까요?"는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니라,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라는 적극적인 응답의 말씀으로 해석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신 성모님께서는 즉시 일꾼들을 불러서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 모든 것을 믿고 맡기시는 말씀입니다.
기적을 행하시든지, 어떤 인간적인 방식으로 해결하시든지 간에...
(아니면 그냥 잔치를 끝내라고 하시더라도...)
그래서 이 말씀은 성모님의 "예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의지와 순종"을 나타내는
아주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은 주님의 권능으로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분,
그래서 우리의 어려움을 금방 해결해 주시는 메시아이신 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런 예수님을 믿으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안 믿는 사람들' 쪽에 초점을 맞춰서 생각하면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됩니다.
기적을 직접 목격했으면서도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일꾼들,
난처한 상황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모르는 채로 좋아하기만 하는 주방장,
이 상황의 당사자이면서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신랑...
그들의 모습은, 하느님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어도 속 편하게 잘 살고 있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또는,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하느님을 원망하면서도,
좋은 일이 생기면
자기가 얻은 행운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의(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전주교구 상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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