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Roma)의 평신도이던 성 파비아누스(Fabianus, 또는 파비아노)는 236년 1월 10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는데, 선거를 실시하는 동안 비둘기 한 마리가 그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신자들은 그 모습이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났던 모습(마태 3,16)과 유사하다고 생각하였고, 이를 교황 선출에 관한 하느님의 의지가 드러난 것이라 여겨 그 자리에서 안수를 통해 성 파비아누스를 교황으로 선출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그러나 그의 재임 기간의 업적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이단 문제로 인하여 누미디아(Numidia, 오늘날 북아프리카 지역의 고대 지명)의 람베시스(Lambaessis)의 주교인 프리바투스(Privatus)를 단죄하였고, 로마의 칼리스투스 카타콤바 내에 주교들을 위한 묘역을 건설하였다.
데키우스 황제 치하의 박해로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는데, 성 파비아누스 교황도 이때 순교하였다. 교황의 시신은 칼리스투스 카타콤바에 안장되었다가 후에 성 세바스티아누스 대성전으로 옮겨졌으며, 1915년에 그의 이름이 적힌 무덤이 발견되었다.
프랑스 남부 나르본(Narbonne) 태생인 성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 또는 세바스티아노)는 283년경에 로마에서 군인이 되었고, 성 마르첼리아누스(Marcellianus, 6월 18일)와 성 마르쿠스(Marcus, 6월 18일) 부제를 격려하여 죽음으로써 신앙을 지키도록 했던 열렬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는데, 그들 중에는 재판장인 성 니코스트라투스(Nicostratus, 7월 7일)가 있었고, 그의 아내 성녀 조아(Zoa, 7월 5일)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성녀 조아는 벙어리였으나 그의 기도로 완쾌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간수 성 클라우디우스(Claudius, 7월 7일), 로마의 집정관 크로마티우스(Chromatius)와 그의 아들 티부르티우스(Tiburtius) 등이 있다.
그는 또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로부터 친위대 대장으로 임명되었는데, 황제는 그가 그리스도인인줄 몰랐다고 한다. 성 세바스티아누스가 신자임이 드러난 것은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는 즉시 처형될 입장이 되었다. 그는 화살을 맞고 쓰러졌으나 성 카스툴루스(Castulus, 3월 26일)의 미망인인 성녀 이레네(Irene)가 그의 시신을 찾으러 가서 보니 아직 살아있음을 보고 극진히 간호하여 회복시켰다.
그 후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황제에게 정면으로 도전하여 그리스도인에 대한 그의 잔인성을 고발하자 황제는 화가 나서 그를 몽둥이로 때려죽이도록 한 다음 로마의 하수구인 '클로아카 막시마'(Cloaca Maxima)에 던져 버렸다. 그의 죽음과 용기는 신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한편 순교한 후에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로마에 사는 루치나(Lucina)라는 부인의 꿈에 나타나 하수구에서 자신의 시신을 찾아서 지금의 성 세바스티아누스 성당이 있는 자리 근처의 지하 묘지에 매장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루치나 부인에 의해 아피아(Appia) 가도에 있는 지하묘지에 묻혔다.
그는 군인, 운동선수 그리고 궁술가의 수호성인이자 전염병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가 전염병의 수호성인이 된 것은 680년 로마에 페스트가 발병했을 때 로마인들이 페스트가 멈추기를 기원하며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유해를 모시고 장엄한 행렬을 거행하자 그 뒤로 페스트가 사라졌다고 한다.
또 1575년에 밀라노(Milano), 1599년에는 리스본(Lisbon)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보호를 기원하는 예식이 거행되었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점차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전염병 희생자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하게 되었다.
강론 : (마르 3,1-6)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시다.>
"예수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마르 3,1-2)."
마르코복음 1장에서,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셔서 마귀 들린 사람을 구해 주신 일과(마르 1,21-28)
시몬의 병든 장모를 고쳐 주신 일은(마르 1,29-31) 모두 안식일에 하신 일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먹은 일을 변호하시면서
바리사이들과 논쟁을 하시기도 했습니다(마르 2,23-28).
그런 일들 때문에 "예수는 안식일을 안 지킨다." 라는 소문이 퍼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벼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고발하려면 구체적인 증거나 증인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 말씀에 나오는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예수님께 자기를 고쳐 달라고 청하려고 스스로 온 사람일 수도 있지만,
전후 사정을 생각하면, 예수님을 고발할 때 증인으로 삼으려고
바리사이들이 일부러 데리고 온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들은(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그 장애자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이라고,
즉 그 장애자를 고쳐 주실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또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런 장애자를 쉽게 고치는 권능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자비와 권능을 '알고' 있었지만,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알고 있는 것'을 사용해서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믿는 것이 아닌 아는 것'은 위험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마르 3,3-4)."
예수님은 사람들의 속마음을 아시면서도 일부러 그 함정 속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들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사람들 가운데에 세우신 것도
그들을 깨우쳐 주시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 말씀의 뜻은,
"안식일은 좋은 일을 하는 날이다. 안식일은 목숨을 구하는 날이다."입니다.
(좋은 일을 '해도 되는' 날이 아니라, 좋은 일을 '해야 하는' 날입니다.)
예수님 말씀에는,
"좋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남을 해치는 일이고,
목숨을 구하지 않는 것은 죽이는 것이다."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남을 해치는 일과 죽이는 일을 해도 되는 날이란 없습니다.
그런 일은 무조건 하면 안 되는 일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좋은 일을 해야 하고,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안식일은 '주님의 거룩한 날'이기 때문에
안식일에는 더욱더 좋은 일을 해야 하고,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좋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하지 않는다면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되고,
또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하지 않는다면
남을 죽이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것은 안식일을 어긴 것과 같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지만, 사실은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가 없어서 침묵을 지킨 것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고발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기는커녕 예수님을 죽일 방법을 의논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옳은 말씀인데, 그들은 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그것은 율법주의에 사로잡혀서 그들의 마음이 꽉 막혀 있음을 나타냅니다.
안 들으려고 하면 듣지 못하고, 안 보려고 하면 보지 못합니다.
자기 탓이 아닌 장애가 있어서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안 들으려고 해서 못 듣고, 안 보려고 해서 못 보는 것은 죄입니다.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마르 3,5-6)."
예수님의 노여움은 인간들의 죄에 대한 노여움이고,
예수님의 슬픔은 어리석은 인간들이 스스로 죄에 갇혀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슬픔입니다.
(그들을 죄의 억압에서 해방시켜 주어도
그들 자신들이 죄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슬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노와 슬픔 속에서도 그 장애자를 고쳐 주시는데,
이것은 인간들의 어리석은 모습과는 상관없이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그 장애자의 반응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가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예수님을 믿었지만 복음서 저자가 생략한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도 바리사이들과 한패여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 쪽으로 가버렸는지...
그가 몸만 고치고 구원은 못 받았는지, 몸도 고치고 구원도 받았는지...
바리사이파와 헤로데 당파는 원래 사이가 안 좋았는데,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는 마음이 맞아서 동맹을 맺었습니다.
'어떻게 없앨까'는 '어떻게 죽일까'인데,
이 말은 예수님을 죽이는 것은 결정되었고, 죽일 방법을 찾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오늘날 우리는 안식일 대신에 주일을 지키고 있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같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떤지?
주일 미사 참례를 한 뒤에 그 나머지 시간은 무슨 짓을 하면서 지냈든지 간에
미사 참례를 했으니 주일을 지켰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리석은 율법주의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전주교구 상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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