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6년 1월 21일 연중 제2주간 목요일(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dariaofs 2016. 1. 21. 05:00

 

 

성녀 아녜스는 로마의 순교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성인 중 한 명이다. 로마의 어느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뛰어난 미모를 지녔던 그녀는 평소에 늘 순결한 생활을 희구하여 하느님께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였다.


그녀가 소녀티를 벗자마자 많은 젊은이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표명하였다. 박해가 일어나자 성녀 아녜스는 집을 떠나 순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어느 청혼자의 고발로 신자임이 드러나 총독에게 끌려갔다.


불과 만 13세에 지나지 않았던 성녀 아녜스는 온갖 고문 기구를 진열해 놓고 위협하는 총독의 직접 심문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러자 격노한 총독은 그녀를 로마의 어느 매음굴로 보냈으나, 성녀 아녜스는 그녀의 영웅적인 용덕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신의 정결을 성공적으로 보전할 수 있었다. 다시 그녀가 총독 앞으로 이송되자 그는 참수를 명하여 그대로 실행되었다.

전해오는 많은 전설 가운데에는 신빙성이 없는 것들도 있지만, 성녀 아녜스가 순교자로서 처참하게 죽었으며 노멘타나 가도(Via Nomentana) 근처의 묘지에 안장되었다는 사실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시대가 지남에 따라 성녀 아녜스는 동정녀의 상징이 되었고, 예술가들은 그녀를 '어린 양'(Agnus 아뉴스; Agnes 아녜스)으로 묘사하였다.

 


                            강론 : 마르 3,7-12 (16.1.21)


“더러운 영들은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마르 3,11)

The mercy of Jesus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설정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자마자 복음을 선포하고, 병자를 치유하며, 마귀를 쫓아내는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십니다. 이에 대해 다양한 반응과 태도가 나타납니다.


이를 통하여 나 자신과 가족, 우리 사회와 몸담고 있는 교회 공동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숙고해보았으면 합니다.

먼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거부할 뿐 아니라 헤로데 사람들과 결탁하여 처치할 모의를 합니다(3,6).


이들은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기 이권을 지키려 했고 그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되는 예수님의 존재 자체를 없애버리려는 악의와 살의를 품게 됩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하느님에 대해 잘 알고 가르치기까지 했지만 실제는 하느님을 완전히 거부하고 죽이려들었던 것입니다.

한편 군중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통해 구원과 해방의 선물을 받고 매우 놀라워하며 그 소식을 널리 퍼뜨립니다. 그러나 군중들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다’라는 신앙고백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적대자들을 피해 호숫가로 물러가셨는데도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분께 몰려듭니다(3,7-8). 그러나 그들은 그분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한 채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찾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찾아오는 군중을 피하려고 제자들에게 거룻배 한척을 준비하라고 명하십니다(3,9). 그분은 이 특별한 임무를 부여함으로써 제자들과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이렇게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의 인격과 일치되어 실제로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분부대로 삶을 통해 하느님을 고백합니다.

한편 더러운 영은 탁월한 영적 감각으로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1,24)이요, “하느님의 아드님이심”(3,11)을 알고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더러운 영은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1,24) 하며 예수님과의 관계에 선을 긋습니다. 알지만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나 자신이나 가족, 우리 사회, 교회공동체 안에서도 다양한 삶의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활발히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교만형’,


현세적 이익을 찾으려고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 기복(祈福)형, 영적 직관력과 식별력으로 예수님의 정체를 잘 알고 입으로 고백하지만 실천하지 않는 ‘몽사가형’ 등.

나는 하느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까? 말이 풍성하고 말씀마저도 넘치고 또 넘치는 ‘말씀의 홍수’ 시대에 하느님을 드러내고 그분의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감동을 주는 증거가 더욱 절실합니다.


우리는 말보다는 삶으로 하느님을 증거하는 신앙인이 되어야겠습니다. 머리로 깨닫고, 몸으로 체험하며, 입으로 고백하고 온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참 제자일 것입니다.

오늘도 마음을 새롭게 하고 온 몸과 마음과 머리와 혼을 다해 하느님의 사랑을 삶으로 노래하는 찬미의 날이 되길 기도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