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6년 1월 22일 금요일 연중 제2주간 금요일(성 빈첸시오 부제 순교자) - 복수하지 않는 승리

dariaofs 2016. 1. 22. 06:05

 

 

 

성 빈첸시오(Vincentius)는 사라고사의 주교인 성 발레리우스(Valerius, 1월 28일)의 제자로서 부제품을 받고 백성들에게 설교하고 가르치는 직분을 충실히 이행하던 중, 그 당시 에스파냐의 총독이었던 잔인한 박해자 다치아누스의 명에 의해 순교하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 황제는 303년경에 그리스도교 성직자를 반대하는 두 번째, 세 번째 칙서를 반포했고, 연이어 평신도 박해 칙서를 내놓았다. 성 빈첸시오의 순교 전에 이미 사라고사에서는 18명의 순교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주교인 성 발레리우스와 함께 순교할 결심을 단단히 한 후 온갖 고문을 받았다. 다치아누스는 산송장이 된 그의 육신을 황량한 들판에 던져 버림으로써 맹수와 독수리의 밥이 되게 하였다.


 에스파냐 최초의 순교자로 현재 포르투갈의 수호성인인 성 빈첸시오의 상본은 종려가지를 쥐고 있는 부제 모습이나 철판 위에서 고문을 받는 모습으로 주로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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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저와 임금님 사이를 판가름하시어

제가 임금님께 당하는 이 억울함을 풀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마침내 복수의 기회가 왔습니다.

다윗이 죽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울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음으로써 사울은 완패를 당합니다.

전투에서도 패배를 당하고 덕스러움 면에서도 패배를 당한 것이며

신앙 면에서는 더더욱 패배를 당한 것이니 완패를 당한 것이지요.

 


우선 덕스러움에서 다윗은 사울을 능가합니다.

사울 안에는 다윗에 대한 적개심과 죽이고픈 마음이 가득한데 비해

다윗 안에는 사울에 대한 미움도 없고 복수 의지도 없습니다.

 


사울의 감정은 다윗에게로 화살이 향하는데

다윗은 사울에게로 감정의 화살을 돌리지 않을뿐더러

아예 부정적인 감정이 자기 안에서 일지 않게 합니다.

 


이것이 사실은 최고수입니다.

제가 자주 하는 얘기 중의 하나가 화를 내지 않기보다는

화가 나지 않게 더 근원적인 자기 관리를 하라는 거지요.

 


화가 났는데 화를 내지 않고 누르기만 한다면

언젠가 폭발을 하거나 화가 병이 되고 말지요.

그러기에 화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기보다

화가 나지 않도록 근원적인 노력을 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화라는 것이 내 뜻대로 안 될 때 나는 것이기에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다른 부정적인 감정들도 다른 사람에게 풀지 않는 것보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아예 생기지 않도록 근원적인 노력을 기울여야겠지요.

 


그런데 사실은 이것이 말이 쉽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자기중심성의 완전한 극복만이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할 수 있는데

자기중심성의 완전한 극복인 완전한 사랑은 하느님 사랑에서 오는 거지요.

 


그러니까 다윗이 부정적인 감정이 아예 생기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인간적인 수덕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의 신앙에서 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신앙적으로도 사울을 능가합니다.

사울은 적개심으로 오직 다윗만 상대하고 있는데

다윗은 사울과만 마주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사울은 다윗만 보고 있지만 다윗은 하느님을 보고 있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울을 봅니다.

다윗은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

그래서 죽지 않으려면 자기가 먼저 제거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하느님의 사람이고

그래서 하느님께서 살리든 죽이든 하실 거라고 생각하고

죽이는 대신 사울의 옷자락을 조금 자른 것 가지고도 마음이 찔립니다.

 


이렇게 오늘 사무엘기는 얘기하지요.

그러고 나자 다윗은 사울의 겉옷자락을 자른 탓에 마음이 찔렸다.

다윗이 부하들에게 말했다. ‘주님께서는 내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인

나의 주군에게 손을 대는 것을 허락지 않으신다.

어쨌든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아니더냐?’”

 


옛날에는 사제를 욕하거나 때리는 것도 독성죄에 들어갔고

그래서 사제가 잘못을 해도 신자들이 물리적으로 해결하려 들지 않았지요.

사제를 그저 한 인간으로만 보고 평등의 관점에서만 보는 요즘

자기의 적대자를 적대자로 보지 않고 하느님의 사람으로 보는

그 깊은 신앙의 눈, 사랑의 눈이 많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