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콘라두스(Conradus, 또는 콘라도)는 이탈리아 귀족 가문 출신의 기혼자였다. 어느 날 그는 사냥을 나갔다가 관목에 불을 지르는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강풍이 휘몰아쳐서 옥수수 밭을 비롯하여 인근 마을까지 불태우는 불상사로 번졌다.
일이 이렇게 되자 그는 어느 가련한 사람이 방화한 것으로 거짓 증언을 하여 그에게 사형까지 언도되었다. 그러나 그 때 그 사람이 모든 사실을 폭로하여 콘라두스는 치명적인 명예 손상과 재산을 잃게 되었다. 이 사실을 심각하게 또 정직하게 반성하게 된 그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임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는 수하 사람들을 해방시켰음은 물론 아내도 클라라회에 입회하도록 주선했고 또 자신은 작은 형제회 재속 3회원이 되어 은수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시칠리아(Sicilia)를 지나 노토(Noto) 계곡에 당도하여 30여 년 동안 살았다. 만년에 그의 영성은 높은 경지에 도달하였고, 피초니(Pizzoni)에서 그가 원하던 대로 보다 고적한 생활을 하였다.
성 콘라두스 자신은 숨은 생활에 원했지만 그의 성덕이 워낙 뛰어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도움과 지도를 받기 위해 몰려들었다. 임종하기 얼마 전에 그는 주교를 방문하여 고해성사를 본 후 다시 노토 계곡으로 돌아와서 새들과 야생동물들을 벗 삼아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그의 장례식은 성 니콜라우스(Nicolaus) 성당에서 거행되었고, 그의 무덤은 순례의 중심지가 되었다.
강론 : 마태 5,20ㄴ-26)
<화해하여라.>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
이 말씀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하나의 기준점으로 삼아서
그들보다 더 의로워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과 같은 위선자가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의로운 일을 했던 위선자들이었습니다(마태 6,1).
그런 '거짓
의로움'은 하느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위선을 버리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 라고 하는 자는 최고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 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마태 5,21-22)."
"사람을 죽이지 마라."는
십계명 제5계명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만 않으면 십계명을 지킨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이고 싶어 할 정도로 미워하는 것'도 살인죄라고 가르치십니다.
증오심, 복수심, 그리고 큰 상처를 주는 모욕과 분노
등도 모두
십계명 제5계명을 어기는 죄라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에 대해서만 재판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속마음까지 심판하십니다(마태 6,4).
요한 1서 저자도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모두 살인자입니다(1요한 3,15)."
(여기서 '형제' 라는 말은 '모든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지만, 그것을 꾹 참고(감추고) 평온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위선인가? 아닌가?
마음속에는 큰
미움이 생겼지만, 그것을 참고(감추고),
미운 짓을 한 그 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한다면, 그것은 위선인가? 아닌가?
화가 나는 것을 참으면서 그
화를 없애려고 노력하는 것은 '선'입니다.
또 마음속에 큰 미움이 생겼지만
그것을 누르고 안 미워하려고 애를 쓰는 것도
'선'입니다.
그러나 화가 나지 않은 척 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또 미워하지 않는 척 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위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게 실제로는 구분하기가 어렵고, 자기 자신도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결국 자기 양심의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마태 5,23-24)."
이 말씀은, '이웃 사랑'을
먼저 실천한 다음에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의 말씀은 '순서'에 관한 가르침이
아니라,
신앙인의 '본분'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이웃 사랑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요한 1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1요한 4,20)."
여기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라는 말은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말입니다.
원망을 품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형제입니다.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뭔가 잘못을 했기 때문에 형제가 그럴 수도 있고,
그 형제가 뭔가를 오해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여간에 지금 내 마음은 편안하더라도 형제는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럴 때에 하느님께 예물을 바치기 전에 먼저 형제에게
가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 형제를 괴로움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 그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만일에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형제가 나에게 원망을 품고 있다면,
형제와 화해하는 일과 하느님 앞에서 회개하는 일을 모두 실천해야 합니다.
그 경우에는 형제와
화해하는 일은
내 쪽에서 그에게 '용서를 청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용서할 일'은 잘 기억하면서도
'내가 용서를
청해야 할 일'은 쉽게 잊어버립니다.
신앙인으로서 형제를 '용서하는 일'은 중요한 일인데,
더 중요한 일은 형제에게 '용서를 청하는
일'입니다.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마태 5,25)."
이 말씀은 "심판을 받기 전에 빨리 회개하여라." 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심판이 시작되면 회개할
기회가 없습니다.
그런데 심판을 언제 받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마태 5,26)."
이 말씀은, 대충 적당히 회개해서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감옥'이 연옥일 수도 있고, 지옥일 수도 있는데,
연옥이라면 아주 작은 죄 하나까지 모두
보속해야만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이라면, 그곳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전주교구 신풍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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