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자국 수도라고 선언했다.
국제사회는 인정했지만 아랍권은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곳에는 유다인들이 들어오기 훨씬 전인 BC 1,800년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만큼 오래된 도시며, 팔레스타인들이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다.
전통적인 해석으로‘ 예루’는 ‘기초’를 뜻하고‘ 살렘’은 ‘평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예루살렘’은 ‘평화의 기초’라는 말이 되겠다.
이 지역을 차지해야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암시다.
실제로 예루살렘은 치열한 전투의 장소였고, 역사적으로 50차례 이상 포위 공격 당했던 곳이다.
절반 이상 파괴 되었던 횟수는 10번이며, 예루살렘을 뺏고 빼앗긴 회수는 무려 36차례나 된다.
예루살렘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가 된 것은 다윗이 이곳을 점령한 뒤부터다.
기원전 10세기 초에 다윗은 ‘여부스족’을 정복하고 그들이 살던 땅을 유다지파 소유로 만들었다.
그때까지 이곳은 어느 지파에도 속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윗은 이곳을 요새화하고 자신의 본거지로 만들었다.
이후부터 사람들은 ‘다윗의 성’이라 불렀다.
예루살렘은 해발 800미터의 산위에 세워진 도시다.
북쪽은 육지와 닿아 있지만 동쪽, 서쪽, 남쪽은 깊은 계곡에 둘러 싸여 있는 천연의 요새다.
동쪽 계곡은 ‘키드론 골짜기’라 부르고
서쪽과 남쪽은 ‘힌놈 계곡’이라 부르는 완만한 낭떠러지에 접해 있다.
따라서 성안으로 갈 수 있는 길은 북쪽 뿐이고 이곳에 성벽과 성문이 있다.
현재는 예루살렘 ‘신시가지’가 성벽 앞에까지 뻗어있다.
물론 성벽 안에는 ‘구시가지’가 예전부터 있었다.
오랫동안 예루살렘 구시가지는 요르단왕국에 속해 있었고 신시가지만 이스라엘 땅이었다.
따라서 성 밖(신시가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성탄절과 부활절 외에는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다 1967년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구시가지’를 자국 영토로 선언하고 통합해 버렸다.
현재는 양쪽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오늘날 예루살렘은 인구 36만의 국제도시로 전 세계 유다인들의 정신적 고향이 되어 있다.
전쟁과 테러의 위험은 줄어들지 않았지만 순례자와 관광객은 여전히 찾아오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성경의 무대이기에 즐겨 방문한다.
이슬람교 신자들은 이곳에서 ‘마호메트’가 승천했다고 알려져 있기에 방문한다.
그들은 ‘메카와 메디나’에 이어 제3의 성지로 예루살렘을 공인하였다.
살아 생전 반드시 한 번은 순례해야 할 장소가 만든 것이다.
신은근 신부(마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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