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이스라엘은 ‘계약 궤’를 여러 장소로 옮겨 모셨다.
대표적인 곳이 ‘실로와 스켐’ 이었다.
두 도시는 성조들이 하느님을 만났던 장소다.
‘계약 궤’에는 모세의 십계판과 만나를 담았던 황금그릇,
그리고 싹이 돋았던 ‘아론의 지팡이’가 들어 있었다.
이스라엘이 가장 신성시한 물건들이다.
그들은 이곳에 주님께서 나타나시어,말씀을 전해 주신다고 믿었다.
그래서 ‘지성소’라 불렀고 천막을 두르고 보호하였다. '이동성전’인 셈이다.
다윗은 ‘계약궤’를 한 곳에 영구히 모시고자 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정복하자 그곳을 적임지로 여겨 즉시 이동성전을 옮겼다.
그리고 지파간의 모든 행사도 그곳에서 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계약 궤’는 왕권과 연결되었고,
예루살렘은 12지파의 연합을 상징하는 신흥도시가 되었다.
다윗은 장차 성전이 들어설 장소로 예루살렘 내에 있는 ‘모리아 언덕’을 지정했다.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바치려 제단을 쌓았던 곳으로 알려진 장소다.
훗날 솔로몬은 이곳에 성전을 건립했고 이것이 예루살렘 ‘제1성전’ 이다.
솔로몬 즉위 4년 2월에 시작했고 11년 8월(BC 957년)에 완공했다.
7년에 걸친 대역사였다.
성전 건물은 동쪽을 향해 있었고 직사각형이었다.
건물은 크지 않았지만 뜰은 넓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건물 안에는 넓이가 똑같은 방 3개가 있었는데 가운데 방에 ‘계약 궤’를 모셨다.
그리고 대사제만이 ‘속죄의 날’에 들어갈 수 있게 했다.
한편 16대 임금 요시아는 31년간 왕으로 있었는데 예루살렘을 왕국의 유일한 제사 장소로 선언했다.
다른 곳에서는 일절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만큼 강력하게 예루살렘을 지원했다.
하지만 그가 죽자 예루살렘의 영화도 끝나게 된다.
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가 침공해 왔던 것이다.기원전 604년과 597년, 두 차례에 걸친 침략으로 성전의 많은 보물들을 빼앗겼다.
그리고 마침내 586년 여름,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성전은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솔로몬의 ‘제1성전’은 이렇게 해서 사라졌다.
백성들은 대부분 포로로 끌려갔고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예언의 성취로 받아들이며 순응했다.
이후 바빌로니아를 무너뜨린 ‘페르시아’는유다인 포로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냈고 ‘성전재건’도 허락했다.
이렇게 해서 성전은 소박한 형태로 복원될 수 있었다.
'제2성전’이다. 오늘날 도면은 알려져 있지 않고 있다.
그토록 중시하던 ‘계약궤’도 없었다. 잃어버린 것이다.
로마시대 이스라엘 왕이었던 헤롯대왕은 제2성전을 증축 보강했다.
작업은 46년간 계속되었고 이성전이 예수님시대의 성전이다
신은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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