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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세계] 23. 예루살렘(3) - 신은근신부

dariaofs 2016. 4. 30. 06:30




바빌로니아를 무너뜨린 ‘고레스’는 유다인 포로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성전재건’도 허락했다.

유다인들은 부족한 재원과 인력으로 20년을 버티며 성전을 복원 해냈다.(BC 515년)


‘제2성전’이다.  당시 설계도는 전해지지 않지만 기록은 남아 있다.

성전 내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었고 광장으로 사용된 ‘2개의 뜰’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제1성전’에서 사용하던 많은 제구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무엇보다 ‘계약궤’가 없어진 것이 가장 큰 손실이었다.

그렇다고 새롭게 만들 수도 없었다.


러다 보니 ‘예절과 종교의식’이 강조되었고  사제들은 교육을 통해 철저하게 전승시켰다.

   
소박했던 ‘제2성전’은 ‘헤롯대왕’ 때 화려하게 증축된다.


예수님께서 장사꾼과 환전상을 몰아내신 바로 그 성전이다.


헤롯Herodes은 기원전 37년에 태어났으며,

친이 로마 시민권을 가졌기에 자동적으로 로마시민이 되었다.


그는 뛰어난 정치력으로  37살에 원로원으로부터 ‘이스라엘 왕’으로 임명되었고 40년간 다스렸다.

  
하지만 그와 그의 부모는 유다인이 아니었다.


헤롯은 ‘출생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마카베오’가문의 ‘미리암’공주와 재혼했고

수많은 성채와 공공건물을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에도 손을 댔다.

작업은 BC 20년에 시작해 46년간 계속 되었고 ‘제1성전’을 능가하는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을 탄생시켰다.

   
헤롯은 성전 터를 2배로 넓혔고 이중으로 성벽을 쌓았다.


그리고 성전 광장을 집회장소로 허락했고 이방인의 출입과 장사도 허용했다.


하지만 광장 안쪽에 담을 쌓아 잡인들의 접근을 막았고

유다인 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렇게 해서 성전은 다시 한 번 이스라엘의 중심이 되었고

유다인 최고법정이었던 ‘산헤드린’도 이곳에서 열렸다.

    
그러나 기원후 66년부터 시작된 ‘유대 독립전쟁’은

헤롯이 심혈을 기울였던 성전을 또 다시 초토화시켜 버린다.


70년 여름, ‘티투스’장군이 이끄는 로마군대는

성전 안에서 ‘결사 항전’하던 유다 독립꾼들을 소탕했다.


이 과정에서 성전은 ‘돌 위에 돌이 얹혀 있지 못할 만큼 ’심하게 파괴 되었다.


겨우 남은 것이 오늘날 ‘통곡의 벽’으로 알려진 서쪽 성벽의 일부다.

  
기원후 130년 로마 황제‘하드리아누스’는

무너진 성전 자리에 로마의 신‘유피테르 신전’을 지었다.


이에 유다인들은 반기를 들며 전쟁을 일으켰다.  제2차 유대 독립전쟁이다.


하지만 반란은 6년 만에 진압되고 예루살렘은 또다시 파괴되었다.

화가 난 황제는 예루살렘의 이름을 ‘아엘리아 까삐똘리나’(Aelia Capitolina)로 바꾸고
로마 스타일로 정비하였다.


그리고 모든 유다인들을 예루살렘에서 추방하며 다시는 들어가지 못하게 왕명을 내렸다


신은근 신부(마산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