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6년 4월 13일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성 마르티노 1세 교황 순교자)

dariaofs 2016. 4. 13. 05:42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의 토디 출신인 성 마르티누스(Martinus, 또는 마르티노)는 로마(Roma)로 온 뒤로부터 그의 학덕과 신심이 널리 알려졌다.


부제 때 그는 교황 테오도루스 1세(Theodorus I)의 교황대사로서 콘스탄티노플에 갔었고, 649년 7월 21일에 그를 승계하여 착좌하였다.


그는 즉위한 해에 라테라노(Laterano) 공의회를 소집하여 이단인 단의설을 단죄하고, 헤라클리우스의 황제 칙령을 견책하였다.

마르티누스 교황이 이를 비방하자 단의설주의자이던 황제 콘스탄스는 화가 나서 새 총독으로 테오도루스 칼리오파스를 로마로 파견하여 그를 콘스탄티노플로 끌고 오라고 명하였다. 이때 교황은 병중이었으나 라테라노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결국은 황제의 병사들에게 체포되어 653년 가을에 콘스탄티노플로 가서 3개월 동안 투옥되었다.


그 후 그는 크림 반도(Krym Peninsula)의 케르소네수스(Chersonesus)로 유배를 가서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잔혹한 대우와 고문의 후유증으로 655년 9월 16일 사망하였다. 그래서 그를 순교자로 공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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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는 무엇에 허기와 갈증을 느끼는가?

나는 무엇으로 양식과 음료를 삼는가?

 


제가 오늘 이런 자문을 하는 것은 오늘 복음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이 세상의 양식만 찾는 제가 아닌지 반성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왜냐면 저는 프란치스코가 맛을 없애려고 음식에 물을 타 먹고,

재를 타 먹었다는 얘기가 무의식 안에서도 제 안에 남아있기 때문일까

옛날부터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으러 다니지 않는 편이었을 뿐 아니라

요즘 그런 방송이 너무 유행인 것도 못마땅해 하는 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먹는 것에 초연하거나 먹고 싶은 것을 안 먹는다거나

근처에서 외식을 할 경우 어디가 더 맛있게 하나 알아보고

그곳에 가는 것도 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아니지요.

 


아무튼 제가 오늘 얘기하고 싶은 것은 육신의 양식이 아니라

마음의 양식, 또는 영혼의 양식을 어디서 찾는가, 그것입니다.

 


어제 저는 하느님 관상 대신에 저를 저 밖에서 바라보듯이 관상을 했는데

매일 인터넷에 강론을 올림으로서 여러분들에게 영혼 양식을 제공하면서

정작 나를 위해서는 어떤 영혼의 양식을 제공하고 있는지 보게 된 겁니다.

 


저는 지난 8년 간 매일 강론을 올리면서 이런 회의감이 들 때마다

가족을 위해 밥상을 차려주면서 정작 자신은 남는 거나 먹지만

그래도 밥상을 차려주느라 자기도 같이 먹는 엄마들처럼

여러분 덕분에 저도 영혼의 양식을 같이 취한다고 자위했습니다.

 


실제로 제가 재작년 쇄신기간을 예산에서 혼자 지낼 때

저 혼자 먹으니 한 끼도 정성껏, 제대로 차려먹지 않고

대충 먹거나 귀찮으면 건너뛰기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기에 여러분을 위해 강론을 올리는 것이 여러분만을 위한 것 아니고,

저에게도 영혼 양식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오늘 제가 반성을 하는 것은 저의 말씀 나눔이 의무나 일처럼 될 때입니다.

 


강의 준비나 맡고 있는 다른 일들 때문에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그때는 영혼의 양식으로 강론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의무로서 하게 되고

여러 일 중의 하나의 일로서 강론을 올리게 되지요.

이럴 때 저는 먹지 않고 일만 하는 셈이 되고,

이런 것이 지속되면 저는 영적 골병이 들고 말겠지요.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영혼의 양식인 것이 틀림이 없고,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강론을 올리는 것도 영혼의 양식이 되지만

주님의 말씀은 어떤 때 우리 지적 욕심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도 있고,

내가 해야 할 일로서의 강의나 강론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생명의 빵이다.”라는 말씀은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이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라는 말씀은 다른 책이나 가르침이 영혼의 양식이 아니라

당신의 말씀이 바로 생명의 양식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이 바로 생명의 양식이라는 뜻인 것입니다.

 


얼마 전 선교 나가 있던 우리 형제 하나가 휴가를 나와

저희 공동체를 방문하여 선교 체험을 나눠 주었습니다.

그 형제는 사제 형제가 아니기에 미사나 성사 거행을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은 하느님의 일을 하기보다 바로 하느님 자신을 사는 것이

자신의 선교라는 차원에서 말을 하다가 울컥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생각만 해도, ‘하느님이라는 말만 하여도

그렇게 눈물이 난다는 그 형제의 말에 모두 숙연하였습니다.

그것이 그 어떤 조리 있고, 깊이 있는 말보다 울림이 있는 거였지요.

제가 지금 저희 관구의 해외 선교 책임을 맡고 있는데

이런 선교보다 더 훌륭한 선교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 골병이 들지 않으려면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묵상하는 묵상기도도 해야겠지만 무엇보다도

성체 앞에서 아무 것도 않고, 어떤 때는 주님의 말씀조차 잊고,

그저 주님 앞에 머무는 성체조배를 자주 해야 할 것이며,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영성체를 자주 해야 할 것입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