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6년 6월 11일 다해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dariaofs 2016. 6. 11. 06:00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사도 11,24)으로 극찬을 받은 성 바르나바는 비록 그가 12사도에 들지는 않았으나 사도로서 인정을 받았다.


그는 원래 키프로스(Cyprus) 태생으로 요셉(Josephus)이라 하였는데,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에 자기 재산을 팔아 사도들에게 봉헌하였다. 이때 사도들이 그에게 바르나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초기 신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의 공동체에서 살았다. 그는 그곳의 공동체를 설득하여 바오로(Paulus)를 제자로 받아들이게 하였으며,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로 파견되어 그곳의 공동체를 둘러보기도 하였다(사도 11,22 이하).


그리고 바오로를 타르수스(Tarsus)로부터 그곳으로 데려왔다. 그는 바오로와 함께 기근으로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공동체에 안티오키아의 기부금을 전달하였고, 그의 사촌 요한 마르코(Joannes Marcus)와 함께 안티오키아로 돌아왔다.

세 사람이 키프로스와 베르게 그리고 비시디아의 안티오키아로 선교여행 길에 올랐을 때, 그들이 유대인들로부터 맹렬한 반대를 받게 되자 이방인들에게 설교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다음에 그들은 리가오니아의 이고니온과 리스트라로 갔으며, 여기서 그들은 신들로 인정받았으나 곧 돌 세례를 받게 되어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로 되돌아갔다.

유대인 예식 준수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을 때, 바오로와 바르나바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회의에 참석하고 그들의 활동 보고를 하였다.


 안티오키아로 돌아오는 길에 바르나바는 요한 마르코를 데리고 다른 방문 길에 오르려 하였으나, 밤필리아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이유로 요한 마르코를 반대하자 그들은 서로 갈라지게 되었다. 이후부터는 그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으나, 바오로와는 화해한 것으로 보인다.

전승에 의하면 바르나바는 알렉산드리아와 로마(Roma)에서 전교하였고, 키프로스 교회의 설립자로 인정받으며, 61년경에 살라미스에서 돌을 맞고 순교하였다.


위경인 바르나바의 편지가 그에게 헌정되었으나, 현대의 학자들은 70년과 100년 사이 알렉산드리아의 신자들에게 보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바르나바의 복음서는 이탈리아의 어느 그리스도인이 기록한 듯하고, 바르나바의 행전은 요한 마르코의 업적일 것이다.



강론   :    (마태 10,7-13)


<선교>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마태 10,7-13).”


이 말씀은 열두 사도를 파견하실 때 하신 말씀인데,
사도들이 해야 할 일과 그 일을 할 때 지켜야 할 원칙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들이 첫 번째로 할 일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일’입니다.
즉 복음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예수님 부활 후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과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런데 복음 선포는 ‘말로만’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실제로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병자들을 고쳐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는 일도 복음 선포에 포함됩니다.
선교활동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 주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말로만 해서 될 일이 아니고, 실제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은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선교활동은 우리가 받은 사랑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신앙인은 모두 각자 자신이 있는 곳에서 한 사람의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거저 받았으니 사람들에게 거저 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아무것도 지니지 말고 가라는 말씀은 ‘실천 지침’입니다.
복음을 전해 주러 가는 것이니 복음만 가지고 가야 합니다.
‘빈 손’으로 가라는 이 지침은 ‘빈 마음’으로 가라는 지침이기도 합니다.
세속적으로는 ‘빈 마음’이지만 영적으로는 하느님으로 가득 찬 마음입니다.
하느님으로 가득 차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선교활동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에도 적용되는 지침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가는 여행이니
그 나라에 들어가서 살 때에 필요한 것만 챙기면 됩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들이 아닙니다.
세속의 명예나 권력 같은 것도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믿음, 희망, 사랑’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은 ‘말로만’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 ‘삶’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곧 선교활동입니다.)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일꾼들을 당연히 먹이신다.” 라는 약속입니다.
‘빈 손’과 ‘빈 마음’으로 가도 하느님께서 먹여 주실 것입니다.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거기에 머물러라.”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마땅한 사람’을 보내 주실 것이다.” 라는 약속입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꾼들을 먹이시는 방법에 대한 설명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직접 올 수도 있고, 이웃을 통해서 올 때도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에 이웃을 통해서 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웃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라는 말씀은,
더 나은 대접을 받으려고 옮겨 다니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니 주시는 대로 감사하게 받아야 합니다.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라는 말씀은,
사실상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전해 주어라.” 라는 명령입니다.
복음 선포는 하느님 나라의 기쁨,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평화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평화를 어떻게 나누어 주나?”
평화를 비는 기도에 하느님께서 응답하셔서 평화를 내려 주실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선교사들이 전해 주는 복음, 기쁨,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 복음, 기쁨, 사랑을 통해서 평화를 체험하게(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평화를 내려 주신 일입니다.


(모든 신앙인은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평화를 전해 주는
‘평화의 선교사’가 되어야 하고,
또 그 평화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서 일하는 ‘평화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일부 종파의 경우 선교활동을 하면서 갈등과 분쟁만 일으키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증오심과 적대감만 심어 주는 경우가 있는데,
예수님의 복음을 그런 식으로 전하면 안 됩니다.
또 옛날에는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한다.” 같은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면서 ‘정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한 집’은,
선교사들이 전해 주는 은총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뜻하고,
‘마땅하지 않은 집’은 거부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라는 말씀은,
어떤 사람이 평화를(은총을) 받기를 거부해서 평화가(은총이) 내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부한 그 사람 쪽의 책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결과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해 주지 않아서, 즉 선교활동을 안 해서,
사람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전주교구 신풍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