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재산 쏟아 공익 활동… “소명이고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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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률저널’과 함께하는 고시 수험생 장학금 수여식 후 기념촬영하는 모습. 앞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가 오 변호사. 오윤덕 변호사 제공 |
“어떤 노인이 한강에 산책하러 나갔다고 칩시다. 한 청년이 한강에 뛰어드는 겁니다. 노인이 지팡이라도 청년에게 뻗어 주면 그 찰나에 청년을 살리지 않겠어요?”
지팡이를 쥔 노인이 청년들에게 지팡이를 뻗는 심정으로 서울 신림동 고시촌 고시생들의 아픔을 들어주고 숨통을 트이게 해준 원로 변호사가 있다.
평생 모은 재산 중 5억 원을 기초 자금으로 신림동 고시촌에 100평 규모의 고시생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다가, 재단법인 사랑샘을 설립해 청년 변호사를 돕고 있는 사랑샘 이사장 오윤덕(프란치스코, 75) 변호사를 만났다.
고시생들의 오아시스 같은 곳
“폐결핵 3기까지 앓으면서 고시 공부를 했던 그때는 붙기만 하면 사람답게 살겠다는 간절함이 있었지요. 고시 낙방은 사람을 생각보다 치명적인 절망 상태로 몰고 갔습니다.”
20여 년 판사로 법정에 있던 오 변호사는 고시생 시절의 뼈아픈 기억을 품은 채, 1994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밤낮과 주말 없이 8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의뢰인들을 만나기 위해 구치소를 밥 먹듯 드나들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변론을 쓰고, 녹음하며 법정을 뛰어다녔다. 정신을 놓고 쓰러져 자곤 했던 오 변호사는 “자는 모습이 악마와 비슷하다”는 아내 말에 정신을 차렸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일에 미쳐 초인적으로 살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각박한 일상에서 탈출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고시생 시절을 떠올렸다. 당시 가톨릭대 겸임 교수였던 그는 자신의 재산 5억 원으로 2003년 2월 신림동 고시촌에 쉼터 ‘사랑샘’을 마련했다.
“고시촌이 집단으로 형성된 거리에는 유흥업소가 즐비합니다. 밀폐된 공간에서 시험공부로 강한 스트레스를 받고, 유흥업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거죠. 그러나 휴식을 취하는 과정에서 경건함도 인간을 붙들어 주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그는 사랑샘에 100명을 수용하는 강당과 3개의 심리상담실,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종교인, 문화 예술인 등 유명 강사들을 초청해 고시생들에게 삶의 희망을 가져다주는 강연도 열었다.
오 변호사는 고시생들과 땀 흘리며 등산을 하고 성지에서 미사도 봉헌했다. 수녀원에서 식사도 함께하고, 시도 함께 읽었다. 그의 아내(권혜옥 마리아)는 상담 공부를 해 학생들의 심리 상담을 해줬다. 모든 비용은 오 변호사가 자비로 댔다.
다시 청년 공익변호사들을 위해
“광야 수험 생활의 고된 행군을 감내하다가 이곳 사랑샘을 찾아 잠시나마 목을 축이고 숨을 고르며 삶의 의미를 재확인하고 다시 꿈을 향해 길 떠나간 이 땅의 청년들을 추억하면서…
이 땅의 모든 청년이 훗날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인류와 우주에 공헌하는 보람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8년간 고시생들에게 오아시스 역할을 했던 사랑샘이 2011년 재건축으로 위기를 맞자, 오 변호사가 사랑샘 현관에 붙여 놓은 작별 인사다. 그런데 건물을 마련할 때 내놨던 보증금 5억 원이 고스란히 그에게 돌아왔다.
“이거 정말 하느님이 계시는가 보다 했지요(웃음). 사랑샘을 운영하면서 돈을 적지 않게 썼는데 하느님이 생각지도 않게 선물을 주셨다면서 기뻐했어요.”
그러나 아내는 “기도 좀 해보자”고 했다. 성당에 다녀온 아내는 “이건 처음부터 하느님께 바친 돈이었다”면서 “제도권 밖에 방치된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다시 기부하자”고 했다.
기부할 곳을 찾던 오 변호사는 2012년 보증금 5억 원으로 공익 변호사를 지원하고 제도권 밖에 있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재단법인 사랑샘’을 설립했다. 철거돼 사라졌던 사랑샘은 ‘재단법인 사랑샘’으로 다시 태어났다.
“돈과 권력은 모이면 썩습니다. 예를 들어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가, 변호사가 되더니 큰 차로 바꿉니다.
그러면 자식들은 ‘우리 아버지 돈이 좀 생겼나 보다’ 생각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교육과 멀어지는 겁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수입의 일부를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것입니다.”
오 변호사는 “상대방에게 꽃다발을 건넬 때는 이미 꽃향기가 내 몸에 남아 있다”면서 “꽃다발을 받는 사람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 행복”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속해 있던 법무법인을 떠나면서 받은 퇴직금 1억 6000만 원도 서울법대 장학재단과 수녀회, 사랑샘 운영비로 전액 기부했다.
재단법인 사랑샘은 돈벌이와는 상관없이 공익활동에 뜻을 지닌 청년 공익변호사들이 사회의 어둡고 낮은 곳으로 내려가 정의를 지켜내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도록 지원한다.
교육 제도권 밖에 방치된 미취업 및 실직 청년과 새터민 로스쿨생, 면학을 이어가고 있는 장기수 등을 돕고 있다.
청년변호사상을 시상하고, 공익 변호사의 비영리 공익 활동 우수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고시촌에서 만난 제자들도 든든한 후원자로 함께하고 있다.
오 변호사는 “사랑샘이 불특정 다수를 위한 보편적인 사랑의 열매가 되길 바란다”면서 “사랑샘의 원천이 썩지 않도록, 샘이 계속 흘러 개울이 개천이 되고, 강이 태평양을 이뤄 거듭나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 해에 2000명 가까운 변호사가 배출된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수입이 많고 적음을 떠나 법조인이라면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과 봉사에 동참하는 일은 선택이 아닙니다. 절체절명의 소명이지요.”
이지혜 기자
▨취재 후기
오윤덕 변호사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상상력이 세상을 바꾼다’는 해리포터 작가 조앤 롤링의 말이다.
오 변호사가 거침없이 일에만 매달려 사는 동안 잠시 멈춰 서서 떠올렸던 것은 자신이 가장 힘들었던 고시생 시절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고시생들을 위한 쉼터를 만들었다.
사랑과 나눔, 봉사에 자신의 삶을 많이 내어주는 오 변호사에게 어떻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대답했다.
“6ㆍ25전쟁을 겪었습니다. 한순간의 찰나에 운명이 전락할 수 있고, 심지어 생사까지 결정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어린 시절에 총을 맞아 너부러진 시신들도 많이 봤고…. 미미한 존재인 제가 누군가에게 연민의 정을 갖는다는 것은 분수에 맞지 않지요.”
창살 없는 감옥에서 홀로 수험 생활을 견뎌내야 하는 고시생들에게 그는 인간적인 대화를 나누며 숨통을 트여줬다.
고시에 낙방한 청년에게는 “간절히 기도하고 문을 두드렸는데 문이 열리지 않으면, 하느님이 다른 곳에서 두 팔을 벌리고 너를 기다리고 있다”고도 이야기해 줬다.
변호사인 그가 고시생들을 모아 놓고 활동을 하자, 정치에 나서려는 게 아니냐며 곱지 못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는 묵묵히 고시생들을 위해 꽃다발을 만들었고, 그 꽃향기는 몸에 배어 갔다. 주어야만 알 수 있는 행복을 느꼈다.
그는 알고 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은 재물임을. 그래서 그것을 하느님께 바치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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