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6년 6월 21일 다해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dariaofs 2016. 6. 21. 05:54



성 알로이시우스 곤자가(또는 알로이시오)는 1568년 3월 9일 이탈리아 북부 카스틸리오네(Castiglione)의 후작 페란테(Ferrante Gonzaga)와 마르타 타나 산테나(Marta Tana Santena)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부유하였으나, 다소 야만적이고 부도덕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신앙심 깊은 어머니는 깊은 사랑으로 알로이시우스를 키우려고 노력하였다.


알로이시우스의 아버지는 그가 군인이 되기를 원하였으나, 그는 이를 원하지 않았다. 그의 가정 교사였던 피에르프란체스코(Pierfrancesco del Turco)는 알로이시우스의 영혼과 정신을 길러 주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1577년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Felipe II, 1556-1598)의 부름을 받은 아버지는, 알로이시우스를 피렌체(Firenze)의 대공 프란치스코 데 메디치(Francesco de Medici) 궁의 시동(侍童)으로 보냈다. 2년 후인 1579년에 알로이시우스와 그의 동생 로돌포(Rodolfo)를 브레시아(Brescia) 지방 만토바(Mantova)로 옮겼다.


1581년 알로이시우스의 가족은 마드리드(Madrid)로 갔고, 알로이시우스는 펠리페 2세 궁정에서 왕자 돈 디에고(Don Diego)의 시동으로 지내면서 철학을 공부하였다. 그 후 왕자가 사망하자 1583년 8월 15일 알로이시우스는 예수회에 입회할 것을 결심하였다.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완강히 반대하며, 일단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원하는 대로 하라고 아들을 설득하였다. 이탈리아로 돌아가자 아버지는 온갖 방법으로 알로이시우스의 마음을 돌려 보려고 애를 썼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1585년 11월 2일 로마(Roma)에 있는 예수회에 입회한 성 알로이시우스는 밀라노(Milano)의 예수회 분원에서 몇 달을 지낸 후 만토바에서 수련을 받았다. 이듬해 2월 15일 아버지가 사망하여 잠시 집에 들러 모든 일을 정리하고 돌아온 후 학업에 정진하였다. 그는 나폴리(Napoli)에 머물면서 형이상학을 공부하였고, 로마 대학에서 철학을 배웠다.


1587년 11월 25일 첫 서원을 한 뒤 곧바로 신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를 가르치던 교수들 중에는 당시의 유명한 학자 바스케스(G. Vazquez, 1549-1604)가 있었으며, 훗날 성인이 된 로베르투스 벨라르미노(Robertus Bellarmino, 9월 17일)가 알로이시우스의 영성지도 신부였다.

성 알로이시우스가 신학을 공부한 지 4년째 되던 1590년 도시 전체에는 흑사병이 퍼졌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병자들을 돌보던 알로이시우스는 이듬해 3월 초 이 병에 전염되어 6월 21일 사망하였다. 그의 시신은 로마의 성 이냐시오(Ignatius)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성 알로이시우스는 시중하고 분별력 있게 모든 일들을 잘 처리하는 뛰어난 학생이었다. 긍정적이고 관찰력이 탁월하였던 알로이시우스는 철학과 신학의 전 과목에 깊이 통달하였으며, 그를 가르쳤던 교수들에게도 인정받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하느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신앙 안에서 어려서부터 정결을 지키며 살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었고, 어떠한 반대에도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특별히 정결에 대한 은사를 받은 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또한 그는 수도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악습들을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으며, 자신의 자존심과 이기심을 이기기 위한 수련을 끊임없이 하였다.

성 알로이시우스는 1621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726년 12월 31일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 후 3년 후 알로이시우스 성인은 젊은이들의 주보성인으로 선포되었다.



No Attached Image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

 

이참에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고,

남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봤습니다.

그런데 막상 생각을 해보니 딱히 바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바라는 것이 없다니?

어찌 바라는 것이 없을 수 있습니까?

바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 지금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부족함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면 제가 행복한 것이고,

배가 불러서 그런 것이라면 제가 잘못 살고 있다는 것인데

성찰을 해보니 두 가지가 다 저에게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바라는 것이 뭘까,

없으면 안 되는 것이 뭘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 , 컴퓨터, 운동화, 이런 것들이 필요하고 그래서

있으면 좋겠다 생각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이 제가 바라는 것들은 아닙니다.

   

이런 세상 것들이 제가 바라는 게 아니라면

저는 주님의 은총을 바라거나 바로 하느님 자신을 바랄 터인데

이것을 제가 남에게 바라고 제가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을 저에게 주기를 제가 누구에게 바래도 되고,

내가 하느님을 너에게 주겠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우리는 서로에게 하느님을 주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지만

하느님을 줄 수 있는 분은 하느님 자신뿐입니다.

   

그렇다면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을 남에게 해주라는 말씀은

아무래도 사랑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앞에서 바라는 것이 없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저는 사랑을 많이 받아 부족함이 없고

그래서 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제 그제 선교교육 피정을 하였는데

저는 조금 사랑을 드렸는데 피정 참가자들은 모두

수십 배의 사랑을 저에게 주셨고 무척 고마워하기까지 하셨습니다.

   

제가 언젠가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존경은 최고의 사랑이고,

감사는 사랑을 제일 잘 받아들이고 최고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사랑을 주십사 하지 않아도 넘치게들 주시기에 바라지 않지만

제가 바라는 것은 사랑이고 제가 줘야 하고 줄 수 있는 것도 사랑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여러분이 바라는 만큼 사랑을 드리지 못함은

여러분 사랑이 제가 되돌려드릴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기도 하고,

제가 너무 배가 불러서 여러분의 사랑에 감사로 되돌리지 못하는 겁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저는 앞으로도 계속

여러분 사랑의 빚쟁이로 살아야 할 것 같고,

하느님께는 더더욱 빚쟁이로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