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6년 7월 6일 다해 연중 제14주간 수요일(성녀 마리아 고레티 동정 순교자)

dariaofs 2016. 7. 6. 05:00



성녀 마리아 고레티(Maria Goretti)는 이탈리아 안코나(Ancona)의 코리날도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는데 6남매 중의 맏이였다. 1896년 그녀의 집안은 갈리아노 교외의 콜레 지안투르코로, 그 다음에는 페리에레 디 콘카로 이사하였다.


이곳에 정착한 직후에 부친은 말라리아에 걸려 운명하니, 남은 식구들은 생계를 위하여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마리아는 상냥하고 침착하였고 또 예의바른 아이였고,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기도, 순명 및 죄악에 대한 예민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12살이 되지 않은 나이였으나 꽤 성숙한 편이었다.

1902년 5월 29일 그녀는 첫 영성체를 하였으며 그해 7월 어느 날 오후, 그날도 그녀는 집안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이웃에 사는 알렉산데르란 청년이 자기 셔츠를 기워달라는 부탁을 하여, 그것을 손질하면서 베란다에 앉아 있었다.


이때 18세 된 알렉산데르가 올라와서 계획대로 문을 잠그고, 미리 준비한 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그녀를 끌고 침실로 가려고 하였다. 그녀는 소리치며 완강히 버티었다.


그녀가 끝까지 항거하자 그는 이성을 잃고 마리아의 가슴을 마구 찔렀다. 그녀의 몸에는 14군데의 깊은 상처가 생겼고, 병원으로 옮겼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약 24시간 후에 운명하였다.

마지막으로 사제가 성체를 영해주면서 알렉산데르를 용서하겠느냐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저 역시 그를 용서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천국에서 기도할 것입니다. 저는 십자가 옆에 있던 강도처럼 그를 천국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마디로 그녀는 정결을 지키기 위하여 순교한 것이다. 그녀는 1950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강론   :    마태 10,1-7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마태 10,6) 

The Mission and Commissioning of the Twelve Apostles by Jesus



속상함을 풀고 주님의 너그러움으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마음에 두셨던 열 두 사도를 뽑으시어 그들에게 죄를 사해주는 권능을 부여하면서 하늘나라를 선포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성격이나 성장 배경, 학식 정도 등 모든 면에서 큰 차이와 한계가 있는 이들을 받아들이시어 하느님이 당신께 맡겨주신 사명을 이루어가십니다.

또한 사도들을 파견하시면서 이방인들이 아닌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10,6)고 하십니다.


이는 이방인들의 구원을 배제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이가 구원받게 되겠지만 이스라엘을 먼저 구원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심에도 이런 한계를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속이 상하게 되는 경우를 경험합니다. 그 주된 원인은 자신의 기준과 기대치가 주변 사람들이나 여건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나 행하는 일들이 내 뜻대로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속상한 마음의 뿌리에는 ‘자신의 뜻’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가 속상해 하고 갈등을 겪는 것은 자꾸만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일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 얼마나 합리적으로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정한 목표에 빨리 도달할 수 있을까 등등을 먼저 생각하고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과 자기애와 행동방식이 바로 마음을 어둡게 하고 사랑의 삶을 살기 어렵게 합니다.

이런 늪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태도에서 보듯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고 ‘사랑으로 다가가는 것’을 더 중요한 삶의 방향과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마음의 어두움을 늘 겪을 수밖에 없고 스스로 상처를 만들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는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봉사 자체보다도 순수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사랑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기도하는 모습과 말마디보다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무엇을 하든 그 지향이 중요합니다.

무작정 ‘무엇을 하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하느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그리고 주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행해야겠습니다.


이런 삶의 태도 자체가 바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일이 되고, 자신과 모두를 살리는 길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삶을 살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오늘 ‘무엇 때문에’ 또는 ‘누구 때문에’란 말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고 속상해 하며 살아가는 자신을 추스렸으면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족하고 연약한 한계에도 하느님 나라를 위한 도구로 뽑아주신 주님의 그 사랑을 떠올리며, 우리도 다른 이들을 넓은 마음과 사랑으로 품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속상함과 짜증과 분노, 그리고 싫어하고 배척하는 감정의 뿌리가 바로 자기애와 내 기준에서 나온 기대,


나의 뜻을 앞세우는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오는 것임을 알아차리고 주님의 너그러우심을 새기는 오늘이길 기도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