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평화신문- [주수욱 신부] 7월 7일 다해 연중 제15주일(루카 10,25-37)

dariaofs 2016. 7. 7. 14:00

[생활 속의 복음] 오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기 위해서


1.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자비로우신 하느님

강도를 만나서 초주검이 되도록 맞고 쓰러진 그 사람의 착한 이웃은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길에 쓰러져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같이 아파하는 그 심정과 그 눈길을 가진 그 사람은 바로 자비로우신 하느님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와 영원히 하나이신 아드님 예수님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떠난 인간이 얼마나 많이 비참하게 살고 죽어갑니까! 그러나 인간은 비참하지도 고독하지도 않습니다. 그 착한 사마리아인과 같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이웃을 자처하시면서 인간을 한 사람 한 사람 찾고 계시니까요.

2. 그냥 지나쳐가는 나

그냥 지나쳐가는 그 사제와 레위인들은 바로 저와 같은 사람입니다. 자기 일에만 사로잡힌 냉혈 인간입니다. 자신의 눈앞에서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서 죽어가는데 못 본 척하면서 피해 갑니다. 남의 얘기 같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있으니까요. 모두 바쁩니다. 다들 노예나 종처럼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겨우 먹고 살아가지요. 그래서 자기 자신마저도 잊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날 내가 그렇게 쓰러져 있을 때 저는 많은 사람 가운데 있으면서도 무관심 속에서 외면당하고 철저하게 고독 속에서 죽어가고 말 것입니다.

3. 오늘 강도를 만나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오늘 그와 같이 강도를 만나서 흠씬 두들겨 맞고 길에 쓰러져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 대답을 하지 못하면, 우리는 복음을 박물관에 가두어놓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인 우리가 복음을 질식시키는 것이지요. 제가 어릴 적에는 시골 고향을 떠나서 도시 변두리로 모여든 노동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판자촌도 생겼지만, 그때 생긴 가난한 신도시는 이제는 가난하다고만 말할 수 없게 변했습니다. 오늘 가난한 사람들은 새로운 형태의 사람들입니다. 과거에 가난한 젊은이들은 희망을 간직하고 같이 온 고향 친구들을 돌볼 줄 알았습니다.

이제는 상황이 많이 변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희망을 찾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느새 외국인이 없으면 한국 사회가 움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일거리를 찾을 수 없는 외국인들은 불법체류자가 되어서 우리 사회에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살아갑니다. 노인들에 대한 대책이 없는 사회에서 이제는 오래 살라고 하는 말도 어떤 때는 저주로 들리는 시대가 됐습니다.

정신적인 고통을 앓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로 늘었습니다. 당사자들의 고통도 크고, 그로 말미암은 사회적 범죄는 다른 사람들을 너무 아프게 하기도 합니다. 상생이 아니라 함께 죽어가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불어 인간답게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 분명해진 시대입니다. 참으로 복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새로운 형태의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복음은 사라지게 됩니다. 교회가 이 일을 게을리하다가 근대 공업화 사회에서 대중을 잃었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항상 새롭게 나타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교회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교회가 모조품들만 갖다 놓고 전시하는 박물관처럼 되면 죽어 버리고 맙니다.

4. 오늘 착한 사마리아인은 교회 안팎에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세상에는 그 사마리아인과 같은 착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 교우들 가운데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천주교회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도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곧잘 자비를 베풀고 사람을 살립니다. 하느님께서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자비로운 하느님처럼 움직이게 하십니다.


오늘 이 복음은 저에게 채찍질하지만, 착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교우들과 시민들을 볼 줄 알게 하는 기쁨도 저에게 안겨 줍니다.


주수욱 신부(서울 대방동성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