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6년 8월 4일 다해 연중 제18주간 목요일(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 나는 행복한가?

dariaofs 2016. 8. 4. 10:06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Joannes Maria Vianney)는 1786년 5월 8일 프랑스 리옹(Lyon) 근교에서 열심한 가톨릭 신자로 농부인 마태오와 마리 블루즈 사이의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비안네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고, 5세 때에는 파리(Paris)에서 가톨릭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추방되고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비안네는 어린 시절을 주로 부친의 농장에서 양을 치면서 지냈다. 정규 교육은 몇 개월밖에 받지 않았지만,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여 비밀리에 첫 고해(1794년)와 첫영성체(1796년)를 받았다.

18세 때 부친의 허락을 받고 에퀼리(Ecully) 본당 발레(Balley) 신부의 지도를 받으며 개인적으로 사제직을 위한 공부를 시작하였으나 기초 교육이 부족하고 수학 능력도 많이 떨어졌다. 특히 라틴어 공부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은 신학생이었던 비안네는 1809년에 징집을 당해 갖은 고통을 겪었다.


1811년에 베리에르의 소신학교에 입학하여 철학 과정을 공부하고 1813년에는 리옹의 대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하였으나, 라틴어 성적이 좋지 않아 1년 만에 퇴학당한 비안네는 학과 성적은 부족하였지만 발레 신부의 도움으로 신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신심과 성품을 인정받아 1815년 8월 13일 그르노블(Grenoble)에서 시몽(Simon)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사제 서품 후 발레 신부가 있는 에퀼리 성당에서 2년 동안 보좌 신부로 생활한 비안네 신부는 1818년에 230여 명의 주민밖에 살지 않는 작은 마을 아르스의 본당신부로 부임하였다. 그는 여기서 죽을 때까지 42년 동안이나 봉직하면서 주민들에게 열렬한 신심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비안네 신부의 노력으로 아르스의 종교적인 분위기는 일신되었고, 그 또한 설교자와 고해신부로 대단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 결과 1827년부터 수천 명의 고해자들이 그에게 성사를 받기 위해 한적한 시골 마을 아르스로 찾아올 정도였다. 매년 2만여 명의 신자들이 비안네 신부를 찾아왔기 때문에, 그는 오전 11시에 설교를 하고 성무일도와 식사, 특별한 상담 시간을 제외하고는 매일 새벽부터 저녁때까지 약 18시간 정도 고해성사를 주어야 했다.


그러나 그의 동료 사제들은 그를 잘못 판단하고, 그를 무식하고 지나치게 열성적이며 허풍선이라고 비난하곤 하였다. 이에 대해 그의 주교는 “저 신부만큼이나 모두 미쳤으면 좋겠다.”고 하며 그를 옹호하였다.

이렇게 열심한 그 역시 가끔씩 사탄의 유혹을 받기도 하였다. 그의 성품은 지극히 단순하였고, 충고는 간단명료하였으나 신심이 차고 넘쳤으며 직선적인 설교를 하였다. 순례자들의 소란, 끊임없는 고해성사 요구들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였다. 그는 단지 세 번 아르스를 떠났는데, 그것은 모두 수도원에 잠시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비안네 신부는 열심한 성무에 지친 나머지 1859년 8월 4일 73세의 나이로 아르스에서 사망하였다. 1905년 1월 8일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복자가 된 비안네 신부는, 1925년 5월 31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하여 시성되었으며, 1929년에는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본당 신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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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시몬에게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불경하기까지 한 생각인데

주님이 너는 행복하다고 하시면 시몬이 행복한 것인가?

주님이 너는 행복하다고 하셨는데 시몬이 진짜 행복했을까?

   

루카복음의 행복선언을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허나 주님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아무리 말씀하셔도

가난한 사람 모두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마태오복음의 선언과 연결시키면

영으로 가난한 사람만이 가난해도 자기가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아무리 주님께서 시몬에게 행복하다고 하셨어도

시몬은 주님이 왜 자기보고 행복하다 하시는지 모르고

주님께서 자기 이름을 시몬에서 베드로라고 바꿔주셨어도

시몬은 여전히 베드로가 아닌 시몬으로 남아있었을지 모르며,

아무리 너는 내 교회의 반석이라고 하셨어도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

시몬은 여전히 반석이 아니라 가실 길을 막는 걸림돌이었을지 모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시몬이 행복한 이유로

당신이 누구신지 하느님께서 알려주셨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당신이 누구신지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정말로 제대로 알았다면 시몬은 분명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몬이 주님을 이해한 것은 반만 안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만 알았지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는 몰랐습니다.

   

그가 생각한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 세상에서 실패해서도 안 되고 죽어서도 안 되는 그리스도였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사랑의 하느님이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셔야만 하는데

사랑은 수난과 죽음이 부활이라는 당시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제대로 안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의 뜻을 제대로 안다면 우리는 참으로 행복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치기로 압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모르던지.

반쪽만 알거나 자기 좋은 쪽으로만 알던지.

   

그래서 행복도 얼치기 행복입니다.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엇이 행복인지도 모르며,

불행하지 않은 걸로 행복한 줄 알거나

불행한 줄 모르고 행복하다고 착각하거나.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너는 행복하다고 말씀하실 겁니다.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기에 행복하십니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