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6년 8월13일 다해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성 폰시아노 교황과 성 히폴리토 사제 순교자)

dariaofs 2016. 8. 13. 05:21



 

성 폰시아노 교황

로마인 칼푸르니우스의 아들인 성 폰티아누스(Pontianus, 또는 폰시아노)는 230년 7월 21일에 교황 성 우르바누스 1세(Urbanus I)를 계승하여 교황위에 올랐다. 그는 232년 로마(Roma) 교회회의를 소집하고 오리게네스(Origenes) 일파의 단죄를 확인하였다.

 

 막시미누스 트락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시작되면서 그가 맨 처음으로 사르데냐(Sardegna) 섬으로 추방되었는데, 그는 여기서 대립교황인 히폴리투스(Hippolytus)를 만나 교회와 화해토록 하였다. 그는 235년 10월 29일 또는 30일에 이탈리아 사르데냐(Sardegna) 섬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시신은 히폴리투스의 시신과 함께 파비아누스(Fabianus) 교황에 의하여 로마의 성 칼리스투스(Callistus) 카타콤바에 새로 마련된 교황 묘지에 묻혔다.

 

 

 

성 히폴리토 사제 순교자

학덕이 뛰어난 로마의 사제였던 성 히폴리투스(또는 히폴리토)는 리옹(Lyon)의 주교인 성 이레네우스(Irenaeus, 6월 28일)의 제자이며 초대교회의 저명한 신학자였다. 그는 교황 성 제피리누스(Zephyrinus, 8월 26일)를 공공연하게 비난하였다.

 

그 이유는 당시 로마에서 퍼지기 시작한 그리스도론적 이단, 특히 모달리즘(Modalism, 삼위일체 하느님은 한 분이신 하느님의 세 형태에 불과하다는 양태설)과 사벨리우스주의(Sabellianism, 사벨리우스의 이단적인 삼위일체설)에 대한 교황의 관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교황 성 칼리스투스 1세(Callistus I, 10월 14일)가 217년에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 성 히폴리투스는 자신의 추종자들에 의하여 대립교황으로 등극하고 성 칼리스투스의 후계자인 교황 성 우르바누스 1세(Urbanus I, 5월 25일)와 교황 성 폰티아누스(Pontianus, 8월 13일)를 극구 반대하고 나섰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그는 235년 막시미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교황 성 폰티아누스와 함께 사르데냐(Sardegna) 섬으로 추방되었는데, 여기서 그는 교황과 화해하였다. 그는 사르데냐에서 운명하였는데, 갖은 고문 끝에 죽었기 때문에 순교자로 간주되고 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반이단 총론”이란 저서이다. 이외에도 그는 "다니엘서 주석"과 "아가서 주석"도 저술하였고, “사도 전승”(Traditio Apostolica)이란 책을 저술하였다. 그는 그리스 교부의 한 사람으로 교회 저술가이자 최초의 대립교황이었다.


강론   :   (마태 19,13-15)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그때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주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마태 19,13-15).”


제자들이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을 꾸짖은 것은
아마도 예수님의 설교를 방해하지 말라는 뜻으로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마르코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언짢아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마르 10,14).
(이 말은 제자들에게 화를 내셨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크게 잘못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화를 내셨습니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라는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어린이들이 당신에게 오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는 말씀이지만,
뜻으로는 어린이들이 당신에게 오는 것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라는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어린이’는 작고 낮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즉 ‘작은 이들’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서 연상되는 예수님 말씀이 있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예수님은 어린이처럼 힘없는 사람들, 즉 ‘작은 이들’을 부르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작은 이들’에게 안식과 평화를 주시는 분입니다.
제자들은 ‘작은 이들’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라는 말씀은,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 즉 ‘작은 이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간다.”
라는 뜻인데, 이 말씀에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나를 만날 권리가 있다.”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제자들이 그 권리를 빼앗으면 안 됩니다.)
‘작은 이들’에게 그 권리가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작은 이들’을 부르셨고, 그들에게 그 권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리코에서 눈먼 사람 둘이 길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외쳤습니다(마태 20,30).
(이것은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데리고 와서 안수기도를 청한 일과 비슷합니다.)
그때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 두 사람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습니다(마태 20,31).
(이것은 제자들이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을 꾸짖은 일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두 사람을 부르셨고,
그들의 눈을 고쳐 주셨습니다(마태 20,32-34).


제자들이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을 꾸짖은 일과
사람들이 눈먼 사람 둘을 꾸짖은 일은 모두
‘예수님을 위해서’ 라는 명목으로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방해한 일입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위한다면,
예수님께서 무엇을 바라시는지,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알아야 하고,
그 일을 도와드려야 합니다.


마르코복음 2장에 있는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고치신 이야기’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일’을 방해한 것은 아니지만,
사랑의 부족과 무관심으로 ‘예수님의 일’에 걸림돌이 된 경우입니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냈다(마르 2,1-4).”


중풍 병자를 데리고 온 그 네 사람은
사람들 벽에 막혀서 예수님께 가까이 가지 못했습니다.
조금씩만 비켜주었다면 병자가 지나갈 수 있었지 않았을까?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것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신 다음에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시자,
그 병자는 들것을 가지고 사람들 가운데를 지나서 걸어 나갔습니다(마르 2,12).
따라서 처음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지나갈 수 없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사랑이 부족했음과 무관심을 나타낼 뿐입니다.


지붕에 구멍을 내고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리는 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것을 도와주지는 않고
구경만 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당시의 가옥은 지붕에 구멍을 내는 것이 쉬운 구조였다고는 하지만,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지붕의 구멍에서 달아 내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귀로는 복음 말씀을 듣고 있었지만,
행동으로는 실천하지 않고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한 내용을 ‘성전 정화 사건’에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강도들의 소굴’로 변한 성전은 가난한 사람들이 다가가기 어려운 곳입니다.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비호하는 사제들은,
‘하느님을 위해서’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것이라고 강변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장사꾼들을 모두 쫓아내셨습니다(마태 21,12).
성전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마르 11,17).
‘모든 민족들’이라는 말은 ‘모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만일에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들이 성전을 차지해서
‘작은 이들’은 들어가기가 어렵다면, 그곳이 바로 ‘강도들의 소굴’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전주교구신풍본당 주임)